This paper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Hungarian women’s costumes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Empire in the 19
th
Century. Since the beginning of the 19
th
century, the Habsburg Empire inflicted strong oppression on Hungary. Under the influence of the European upper class, exaggerated and sumptuous costumes were fashionable in the Hungarian Aristocracy. They preferred blouses decorated with colorful embroidery, pleated sleeves, gorgeous beads and lace, long pleated skirts with velvet borders, corsets decorated with delicate embroidery, coats adorned with lace, and capes. However, Hungarian nationalists protested against the Habsburg Empire’s oppression; consequently, Hungarian national costumes expressed a sense of resistance and solidarity.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The Hungarian women’s costumes were different from women’s costumes of the Habsburg Empire in regards to headdress, bodice, apron, pattern and shoes. The Hungarian women’s headdress consists of the parta and veil. The bodice is richly adorned with colorful embroidery and differs from skirts in color and material. The Hungarian women’s apron is distinct from the Habsburg Empire as a unique Hungarian item. Finally, Hungarian costumes are characterized by the Oriental pattern and short boots with metal heels.
1. 서 론
세계 인류사에 비춰진 복식의 유형을 보면 외형적인 특징은 시대적인 사회변천과 맞물려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개별 민족의 전통적인 의상문화는 오랜 기간 동안 각 민족이 처해있는 자연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되며, 그러한 다양한 주변 요인들에 의한 변화를 통해 민족 생활의 전반적인 사정에 가장 적합한 의상의 형태와 기능이 갖추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전통의상은 단순한 의상의 개념이나 물질의 개념이 아니라, 민족의 고유한 생활감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있고 그 민족이 영위하는 생활 전반의 요소들과 융합하게 되며 동일한 의상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간의 유대를 형성하게 하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Kwon, 2003)
.
이러한 특징은 동유럽의 여성복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동유럽 복식에 대한 선행연구로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전통의상에 대한 연구
(Cho & Lee, 2006
;
Choi, 2003
;
Choi & Cho, 2004
;
Kim, 2009
;
Kwon, 2003)
가 진행되었으며, 발표된 연구 논문 수를 볼 때 국내 서양복식에 대한 연구가 서유럽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2013년 12월 3일부터 2014년 3월 9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된 “헝가리의 왕실 보물-합스부르크 왕가와 헝가리 귀족사회”에 전시된 유물을 중심으로 19세기 왕정복고시대 헝가리 여성복식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 전시는 국립고궁박물관과 헝가리 국립박물관이 공동으로 개최하여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를 통치하였던 17~19세기에 꽃피웠던 화려한 헝가리 왕실의 의상과 보물, 회화자료들을 소개하였다. 비록 헝가리인 스스로가 독자적으로 왕조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독특한 헝가리의 문화와 유럽대륙 최고의 대제국이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화려한 문화가 조화된 이 시기의 유물들은 복잡한 동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왕정복고시대 헝가리의 시대상에 비춰진 여성복의 특징을 조명해 봄으로써 기존 서유럽 중심의 복식문화가 동유럽으로 전이되면서 시대 상황과 국가에 따라 표출되는 양상에 대해 고찰해 봄으로써 서양복식의 연구영역을 넓히고 나아가 연구의 다양성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연구방법으로는 전시된 유물자료와 관련 문헌자료 및 회화자료를 연계한 실증적 접근방법을 사용하였고, 연구범위는 왕정복고시대의 헝가리 귀족여성복식에 한정하였다.
2. 이론적 배경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왕정복고시대 헝가리의 사회상을 이해하기 위해 헝가리의 역사와 17세기 이후 합스부르크의 압제에 대한 저항을 표출한 민족주의 운동 전개 등 당시의 시대상황과 민족복식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 2.1. 헝가리의 역사
헝가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들이 있지만 고고학적‧역사적인 조사를 통해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헝가리 민족이 5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헝가리 민족의 어족은 우랄어족의 한 지류인 핀-우그르 어족에 속하지만 그들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문화는 터키 유목민족과 유사하다
(Lee, 1996)
.
헝가리 최초의 역사는 9세기 말 마쟈르 인이 다뉴브 강 중류 지역에 정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중류 다뉴브 강 유역은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기에 아주 적당한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유목민족적 성향이 강한 마자르인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약탈의 습성이 약해지게 되었고, 1000년에 교황청과 독일황제가 헝가리의 부족장 스테판(Stephen, 재위 997~1038)에게 헝가리 왕의 칭호를 주기로 합의하였다. 이 사건은 헝가리 민족의 개종을 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헝가리를 유럽 기독교 국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 당시 왕의 칭호와 함께 수여받은 왕관이 바로 헝가리의 민족적 상징인 ‘성스러운 왕관(Holy Crown)’으로서 현재 헝가리 국회의사당에 보관되어 있다(
Fig. 1
). 이 기간 동안 신성로마제국, 보헤미아 왕국, 폴란드 왕국, 러시아의 공국들 등 주변국과의 전쟁과 평화의 시기가 반복되었다. 13세기 몽고의 침입과 15세기 터키의 침입에 이어 17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가 헝가리 전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헝가리인에 대한 경제적 압박과 종교적인 탄압을 가했다. 18세기 초에는 이에 대항하여 대규모 민족 반란이 일어나지만, 반란은 실패하고 오스트리아의 헝가리 지배 체제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19세기 초에 민족의식이 고조되고, 1848년 러요시 코슈트(Lajos Kossúth)를 중심으로 국민군이 조직됨으로써 합스부르크가에 대한 무력 항쟁이 전개되었다
(Lee, 1999)
.
The Holy Crown of Hungary.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18.
- 2.2. 헝가리의 민족주의 운동
1541년부터 1683년까지 오스만-터키 제국에 의한 국토가 3개로 분리된 상태는 1686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군사원조로 헝가리의 통일을 이루었으나,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은 헝가리를 제국의 영토에 속하는 하나의 지방으로만 간주하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가면서, 헝가리 귀족 계층을 협박하고 매수해 1687년의 귀족 의회에서 헝가리 귀족들로 하여금 황위 선출권을 포기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헝가리 국왕을 세습하도록 했다. 또 국왕의 불법적인 권력행사에 저항할 수 있는 귀족들의 저항권도 포기하고, 신교에 대한 신앙의 자유도 제한하는 내용을 결정하도록 했다
(Franklin, 1976)
. 이에 트랜실바니아 공국의 고위 귀족 가문 출신인 라코치 2세(II.Rákóczi, Ferenc)가 주도한 독립투쟁(1703~1710년)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을 강하게 압박하였으나 무위로 종결되었다. 1713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승리한 합스부르크 제국은 위트레흐트(Utrecht) 평화조약으로 현재의 벨기에 지역과 이탈리아 북부 여러 지방을 그들의 영토로 삼음으로써 그 세력의 중심이 되는 다뉴브 강 연안의 여러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유럽의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확립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를 위해 헝가리 왕국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정책을 펼쳤다. 이는 라코치 2세의 독립투쟁에 충격을 받은 합스부르크 제국은 헝가리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참여했던 사람을 비롯하여 헝가리의 고위 귀족들을 친합스부르크화하기 위해 그들의 주거지를 빈으로 옮기거나 보헤미아나 오스트리아 상류 귀족 가문과 혼인을 맺기도 하면서 합스부르크 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나갔다. 그러나 1831년 콜레라의 창궐 이후 북부 헝가리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농민과 농노의 반란을 통해 개혁 지향적인 귀족들은 헝가리 왕국 주민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농민과 농노의 협조 없이는 빈 왕실과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봉건적 적대관계를 넘어 1848년 헝가리 시민혁명으로 이어 갈 수 있었다
(Lee, 1996)
.
1848년 헝가리 시민혁명과 1849년 독립전쟁은 합스부르크 제국과 헝가리 왕국과의 밀접한 상호관계에 기인한 것이며, 농노해방을 제와하고는 결과적으로는 좌절된 시민혁명과 독립전쟁은 헝가리민족의 정체성과 민족문화 그리고 19세기 후반 이후의 헝가리의 민족적 정치문화의 만개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848년 이전까지는 헝가리 개혁시대와 민족 정체성 형성을 주도해 온 귀족계층은 낭만주의적 이상에 젖어 농민과 민중의 문화를 민족적 일체감의 주요 요소로 간주하여 민족 정체성과 민족 문화에 이러한 ‘농민적‧민중적’ 취향을 반영하여 왔으나, 독립전쟁의 좌절을 기점으로 하여 이러한 경향은 애국심의 표현단계에서 시작하여 민족 문화의 보고로서 최종적으로는 헝가리 민족 문화의 상징으로 승화하게 되었다. 1849년 이후 합스부르크의 강력한 압제에 수동적 저항을 지속하던 헝가리로서는 민족의 존립과 주권을 보전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적 자유주의 이상에 경도되어 있던 사회의 지배계층을 구성하고 있던 귀족계층은 거대한 슬라브와 게르만 세력권 사이에서 헝가리 왕국이 취할 수 있는 보호막으로서는 합스부르크 왕국이 적합하다고 간주하여 합스부르크 왕국과 군합국(君合國 personalunion, 2개국 1인 국가원수 체제)의 형태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할 때에만 헝가리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고, 발칸지역에 대한 헝가리의 영향력도 유지 및 확대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합스부르크와 대타협을 행하여 마침내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이라는 이중왕국(Dual Monarchy)체제를 구축하여 동부유럽의 거대 제국이 실재하게 되었다
(Park, 2006)
.
- 2.3. 헝가리의 민족복식
헝가리의 민족복식은 A. D. 896년 아시아로부터 유럽으로 이주해 온 마자르족의 영향으로 동양과 서양의 복식이 혼합된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Földi-Dózsa & Kralovánszky, 1994)
. 이러한 배경에는 헝가리의 역사에서 언제나 유럽과 아시아적 요소가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비롯된다. 유럽인들은 다뉴브 강 너머 지역을 확보한 적이 없었고, 트랜실바니아를 일시적으로 점령했다 해도 대평원지역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아시아인은 다뉴브 강을 건너 서부에까지 침입해서 왕국을 건설했지만 곧 몰락하고 말았다. 최후로 아바르(Avar. 5~9세기에 중앙아시아, 동유럽, 중앙 유럽에서 활동한 몽고계의 유목 민족)인들이 대평원 지역을 상당 기간 점령하였으나, 9세기에 샤를마뉴 대제에게 패하고 물러남을 되풀이함
(Lee, 1999)
으로써 동서양의 복식이 공존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동서양복식의 공존은 특히 헝가리의 민족복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Fig. 2
는 민족복식을 착용하고 있는 헝가리 농민들의 모습으로서 여성이 착용하고 있는 스커트와 앞치마의 동양적 패턴의 자수, 머리에 쓴 긴 스카프, 부츠를 착용하고 있다. 이는
Fig. 3
의 귀족 여성 복식에서도 볼 수 있는데 농민의 복식보다 화려하게 수놓은 자수가 인상적이다. 현대에 이르러 헝가리 민족복식은 민속 무용복으로 착용이 되고 있으며, 복식 아이템 중 스커트와 앞치마, 부츠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Fig. 4
).
Hungarian peasants. The imperial style: Fashions of the Hapsburg Era(1980), p. 96.
Hungarian nobles. The imperial style: Fashions of the Hapsburg Era(1980), p. 93.
Hungarian folk dancers in 1935. http://museumvictoria.com.au/
이처럼 헝가리의 여자 민족복식에서 특이할 만한 복식 아이템은 스커트와 앞치마, 베일, 부츠이다. 스커트는 곱게 플리츠된 면이나 리넨 소재에 민무늬나 꽃무늬의 자수가 놓이기도 하고, 8~9겹의 풀 먹인 페티코트를 속에 착용함으로써 풍성한 실루엣을 연출한다. 백색 바탕에 오픈워크 스티치(open-work stitch) 방식의 화려한 자수가 놓인 앞치마는 헝가리에서 매우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기혼 여성은 대개 머리를 틀어올리고 캡이나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다. 이는 귀족 여성의 베일로 우아함을 더하는 아이템으로 변화하였다
(Harrold & Legg, 2000)
. 여성들이 착용한 부츠는 터키식 부츠로서 성별과 경제적 상황을 초월하여 헝가리에서 널리 애용되는 아이템
(Leventon, 2008)
으로서 16세기와 17세기에 걸친 오스만-터키의 영향과 아시아로부터 유럽으로 이주해 온 마자르족의 유목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19세기 왕정복고 시대 헝가리 여성복식의 특징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왕정복고 시대 헝가리 여성복식의 특징을 분석하기 위해 19세기 왕정복고시대 서유럽 여성복식의 경향과 헝가리 여성복식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사료되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패션경향과 당시 헝가리 여성복식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당시 시대상과 패션의 인과관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 3.1. 19세기 왕정복고시대 서유럽 여성복식의 경향
19세기의 서유럽은 나폴레옹 제국의 붕괴 이후 전 시대의 왕정이 복고되면서 귀족중심사회가 다시 전개되고 있었다. 복식양식이 두드러지게 귀족풍이 된 것도 이때였다. 어깨를 드러내고 허리를 조이고 스커트를 넓히는 등 혁명 이전의 귀족을 연상케 하는 패션이 상류사회의 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Fig. 5
). 복식은 이러한 시대사조의 좋은 표현대상이 되었고, 특히 여자복식은 곡선과 부드러운 주름으로 장식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었다. 여기에 직물산업의 기술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향상은 로맨틱 스타일(Romantic Style)의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Chung, 2000)
. 이러한 경향은 1830년대와 1840년대에 걸쳐 전반적인 여성복식에 영향을 주었다. 1830년대와 1840년대 여성복식은 부풀린 소매, 넓은 칼라, 넓은 모자 그리고 퍼지는 스커트로 수평의 미가 절정에 달했다. 바디스는 몸에 붙을 정도로 잘 맞았고 약간 길어졌다. 대개 어깨에서 허리까지 연결된 사선이 있었다. 이러한 V자형은 어깨 폭을 강조하면서 허리를 최소로 보이도록 도왔다. 스커트는 풍성하였지만 무거운 장식들이 사라지고 길이가 짧아졌다. 네크라인은 1830년대의 수평방향에서 1840년대에 V자형으로 바뀌었고, 허리선이 외관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낮아지고 어깨에서 허리 중심까지의 사선은 다양한 방법(
Fig. 6
)-비스듬한 다아트, 바디스 그 자체에 있는 개더의 주름 또는 덧댄 패널-으로 만들어졌는데, 앞중심에서 뾰족이 내려온 허리선과 밑에까지 내려온 여밈과 이 길이를 강조하는 효과를 강화시켰다
(Payne, 1965/1997)
. 스커트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따라서 페티코트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가는 허리와 단에서 넓어지는 스커트 곡선의 실루엣이 강조되자 균형을 잡기 위해 버사칼라(bertha collar)와 어깨 장식칼라인 펠레린(pelerine)를 달아서 어깨선을 점점 넓혀주고 소매위쪽을 기교적으로 부풀려 주기 시작했다. 매머루크 슬리브(mameluke sleeve)나 레그 오브 머튼(leg of mutton sleeve), 지고 슬리브(gigot sleeve) 등 그들이 그리워하던 근세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하였던 디자인을 차용하였다(
Fig. 7
,
8
,
9
).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 봉건귀족이 누렸던 근세사회에서의 부귀영화를 동경하게 되면서 당시의 복식문화가 재유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Chung, 2000)
.
Portrait of Dr. Josef' family in 1835. TThe imperial style: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53.
V-shaped neckline and waistline, bertha collar in 1846. A history of costume in the west(1997), p. 361.
Bertha collar and pelerine. A history of fashion (2000), p. 302.
Bertha collar and mameluke sleeve in 1830. A history of costume in the west(1997), p. 354.
Horizontal neckline and leg of mutton sleeve in 1835. A history of costume in the west(1997), p. 357.
- 3.2. 19세기 왕정복고시대 합스부르크 제국의 여성복식 경향
19세기 초중반 합스부르크 제국은 비더마이어(Biedermeier)라는 문예 사조가 예술, 철학, 패션을 표현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자리하였다. 비더마이어라는 용어는 문예 사조로 쓰이기 전에 특정 시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겸손하고 중용의 길을 걸으며 도덕적으로 엄격하였으며 구속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초연한 자세와 조용한 가운데 성숙되어가는 인내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생활감정에 충실하면서 시대의 정치 상황에 등을 돌리고 한가로운 고향의 정취나 평화로운 소시민의 생활을 소재로 삼아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들의 문학을 비더마이어 문학이라 부른다
(Cho, 1993)
.
이러한 유래에서 비더마이어는 1815년 나폴레옹 제국 붕괴에서 1848년 2월 혁명까지 “좋았던 옛 시절” 즉 과거 귀족중심의 화려했던 시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Fig. 9
의 1835년 평화로운 전원 속 가족 그림에서 구 귀족사회의 여유로움과 복식미를 볼 수 있다. 비더마이어의 영향은 비엔나 여성복식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820년대 초반 이후 비엔나 여성복식은 실루엣에 큰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슴선 밑에 있던 라인이 자연스러운 허리 위치로 내려오고 벨트로 강조한 점이다. 또한 스커트는 보다 풍성해졌는데 여전히 뒤에 주름이 있고 앞은 편평한 스타일이다(
Fig. 11
,
12
). 풍성해진 스커트의 영향으로 르뎅고뜨(redingote) 또한 허리선이 없는 보다 풍성한 스타일로 변화하였고 당시 매우 유행한 스타일이었다(
Fig. 10
). 그러나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은 숄이었다. 페이즐리(paisley) 문양의 아름다운 캐시미어 숄은 처음에는 인도에서 수입되었다가 1812년 이후 비엔나에서 직접 제조하였고, 1825년에는 비엔나의 제조업자 아타바(Arthaber)가 숄을 수출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울 소재의 고품질 제품은 비엔나의 가장 사치스러운 수출품 중의 하나였다. 이처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숄은 비엔나에서는 “터키 숄(Turkish shawls)”이라 불렸지만 유럽 전역에서는 “비엔나 숄(Viennese shawls)bb로 잘 알려져 있다. 1820년대는 여성들이 다시 보석을 착용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다시 부강해짐에 따라 작은 귀걸이와 정교한 목걸이가 다시 유행하고 짧은 장갑 위에 팔찌도 착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화려함을 반영하는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골드 햇(gold hat)이다. 실제로 골드 햇은 밀짚과 리넨 소재에 금으로 된 시퀸(sequin)과 금속사로 수를 놓고 금사 레이스로 트리밍한 화려한 모자로서 전원풍에 화려함을 더한 이 시기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복식 아이템이다. 1830년대에 비엔나 여성복식의 변화는 20년대보다 복식의 볼륨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스커트뿐만 아니라 소매가 점점 더 커지는 반면에 장식의 크기는 작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시기는 패션뿐만 아니라 가구와 유리제품, 도자기 공예와 같은 장식예술에서도 비더마이어 초기의 직선적이고 단순한 라인이 “제 2의 로코코”를 연상케 하는 경쾌하고 화려한 곡선미로 대체되는 전환기였다. 1830년대 후반 이러한 경향이 보다 짙어지면서 소위 네오-로코코(Neo-Rococo) 양식이 패션에 열정적으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스커트의 길이가 바닥에 닿고 매우 풍성하고 화려해졌다. 이 넓은 스커트는 페티코트에 앞이 열린 18세기 로코코 스타일이었다(
Fig. 13
). 이 드레스의 바디스는 콜셋으로 매우 타이트하고 당시 유행했던 네크라인인 데콜테(decollete)에 버사(bertha)칼라가 달려 있다. 허리 라인은 뾰족하게 재단되어 전형적인 로코코 스타일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매는 짧고 퍼프된 스타일이나 앙가장트(engageantes)를 흉내낸 스타일이 유행하였다. 이 시기 선호되었던 직물 또한 18세기에 선호되었던 실크, 브로케이드, 백색 또는 파스텔조의 벨벳으로서 정교한 자수나 꽃무늬 패턴의 직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80)
.
Redingote in 1817. The imperial style :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44.
Viennese woman in 1823. The imperial style :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48.
Viennese women in 1829. The imperial style :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49.
Viennese woman in 1838. The imperial style :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54.
- 3.3. 19세기 왕정복고시대 헝가리 여성복식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왕정복고시대 헝가리 여성복식을 이해하기 위해 왕정복고시대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헝가리 여성복식의 변화상을 고찰하고 헝가리 여성복식과 비엔나의 여성복식을 비교분석하여 헝가리 여성복식에 반영된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 3.3.1. 왕정복고시대 이전의 헝가리 여성복식
17세기 헝가리 여성복식은 독일과 스페인의 르네상스 말기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으며,
Fig. 14
와
Fig. 16
처럼 레이스 트리밍한 앞치마와 스커트 햄라인의 화려한 자수라는 헝가리 특유의 감성과 조화를 이루어 근대 헝가리 여성복식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앙상블은 축제나 경축일에 착용되었으며, 풍성하게 프릴 잡힌 블라우스와 끈으로 조이는 바디스, 스커트 위에 앞치마, 베일, 파르타(parta, 헝가리 여성의 머리장식)로 구성된다. 스커트는 바닥까지의 길이와 긴 트레인이 달린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스커트는 자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단색의 벨벳이나 다마스크를 사용하였고, 파랑, 짙은 빨강, 보라색이 인기 있는 색으로서 장식효과를 주기 위해 은사나 금사로 직조된 브로케이드를 사용하였다. 뼈가 삽입된 민소매의 바디스는 스커트만큼 화려하게 장식되었는데 정교하게 디자인된 금속 걸쇠에 끈을 꿰어 앞에서 조여 맬 수 있게 되어 있다(
Fig. 19
). 앞치마는 3면 가장자리에 레이스 트리밍이 되었고, 베일의 헝가리 남성의 망토와 같은 부위기로 착용되었다. 모피로 트리밍한 보다 긴 망토는 17세기 헝가리 남녀 모두에게 착용된 아이템이다. 젊은 여성은 머리에 파르타를 착용하였는데 이것은 에나멜칠한 걸쇠와 진주로 장식되었고, 나이든 여성들은 보다 넓은 파르타를 좀 더 머리 뒤로 착용하였다. 그리고 진주로 장식된 납작한 금속판으로 된 파르타는 오직 기혼 여성만이 착용할 수 있었고(
Fig. 15
), 헝가리 복식을 착용한 여성들은 남성들의 부츠에 달렸던 금속 소재의 힐이 달린 짧은 부츠를 신었다. 18세기 중반 헝가리 여성복식의 패션은 작은 변화가 일었는데 헝가리식 스타일은 휴일이나 축제에 착용되었고 평상시에는 파리와 비엔나에서 유행한 복식이 착용되었다. 헝가리의 역사학자인 피터 아포르(Péter Apor) 백작은 이러한 가슴이 많이 노출되는 새로운 스타일의 외국 패션을 맹비난하기도 하였다.
Fig. 17
은 이 당시의 복식으로서 네크라인 많이 파여져 있고 백색의 얇은 면소재 블라우스의 소매는 2단으로 리본이 묶여 있어 서유럽 스타일이지만 볼륨이 작은 것으로 보아 헝가리 스타일이 믹스된 것으로 보인다. 1770년대와 1780년대에는 양귀비와 데이지 같은 로코코 스타일의 꽃문양이 스커트의 밑단과 허리밴드에 플랫 스티치(flat stitch, 간단한 상하운동으로 자수천을 통과하며 대부분 단일 방향으로 이동하는 스티치) 방식의 자수가 매우 유행하였다(
Fig. 18
). 이처럼 헝가리 스타일의 복식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특별한 행사에서만 착용되었다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80)
.
Hungarian Noble Couple in 1700s.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98.
Parta in 1700s.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80.
Hungarian lady in 1600s. The imperial style: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79.
Hungarian lady's gala dress in 1750s. The imperial style :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84.
Hungarian lady;s gala dress in 1780s. The imperial style :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85.
Bodice in 1750s.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68.
- 3.3.2. 왕정복고시대 이후의 헝가리 여성복식
왕정복고시대 이후 헝가리 여성복식에서도 로맨틱 스타일의 영향이 나타난다. 이 시기에 새롭게 유행한 귀족풍 의상은 목선을 옆으로 퍼지게 하여 어깨를 많이 드러내고 소매의 윗부분을 부풀리고 허리는 더욱 가늘게 조였으며, 스커트를 부풀렸다. 여기에 주름이나 레이스 장식을 통해 화려한 로맨틱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시 된 것은 색감과 장식의 조화였다. 조의를 표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헝가리 여성들은
Fig. 20
처럼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었다. 가장 귀중한 옷감은 실크였지만 벨벳이나 공단도 중요하게 여겼다. 뿐만 아니라 금실과 실크를 사용한 자수, 금단추, 레이스 등으로 복식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헝가리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고 품위 있는 복식에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헝가리의 복식문화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19세기로 접어들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압제정책이 시행되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귀족들은 기존의 복식 대신 평민들, 특히 농민들의 민속복식을 모방하기 시작하였다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2013)
. 이러한 저변에는 민족과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그 핵을 민중 즉 농민들에서 찾아와 농민들의 언어, 전통 구비문학, 농민들의 복색과 민속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으며, 이는 19세기 초반에는 ‘헝가리 패션’(magyar mód)으로 칭해지며 유명하기 시작하여, 1848년과 1849년 이후에는 귀족 출신 고위 정치가들도 헝가리 목동의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외투를 공식 석상에서도 착용할 정도로 ‘민족적 양식’(nemzeti stíl)으로 격상되고, 애국적 견지에서 그리고 민속과 민속예술의 민족주의적 가치를 부여하여 이중왕국 시기에는 도시가정도 농민들의 물품과 장식품들로 장식하는 것이 대유행하게 되었다
(Lee, 2011)
.
Hungarian noble Ladies in 1830s.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42.
Fig. 20
과
Fig. 21
은 1830년대 헝가리 귀족여성들로서 드레스는 몸을 꽉 조이는 헝가리 스타일의 보디스, 망사 장식 앞치마와 뒷자락이 길게 달린 드레스, 금실과 은실로 짠 화려한 식물과 물방울무늬의 긴 베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리본, 레이스, 술, 펜던트가 달린 머리장식을 하고, 진주귀걸이와 목걸이, 부채와 팔꿈치까지 오는 하얀 장갑을 착용하고 있다.
Fig. 22
는 1867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 드레스로서 1830년대 귀족여성의 드레스 스타일과 유사하며, 이는 헝가리의 민족의식이 지속적으로 복식을 통해 이어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Fig. 23
은 1867년 엘리자베스여왕의 가족을 표현한 그림인데 아이들의 복식도 헝가리식을 따르고 있으며,
Fig. 5
처럼 전원 속 구 귀족사회의 정취를 엿볼 수 있다.
Fig. 24
는 1867년 헝가리 여성의 연회복으로서 앞치마와 베일이 같은 재료로 사용되었고, 베일은 헝가리 여성의 머리장식인 파르타에 부착되어 있다. 몸에 타이트하게 붙는 붉은 벨벳 보디스 부분은 생선뼈로 고정되어 있다. 벨벳의 테두리와 뒷면은 금사로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고 목과 팔 가장자리 부분은 부채 형태로 보빈레이스(bobbin lace, 바늘 대신 보빈을 사용하여 짜는 수직[手織] 레이스)가 금사로 장식되어 있으며,
Fig. 25
는 드레스 밑단에 놓인 자수로서 헝가리 전통 자수의 화려함을 표현하고 있다.
Hungarian noble Lady in 1830s.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101.
Queen Elisabeth in 1867.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55.
Queen Elisabeth and her family in 1867.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54.
Hungarian woman's gala dress in 1867.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66.
Hemline of hungarian woman;s gala dress in 1867.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63.
헝가리 여성복식에 가장 큰 특징은 드레스 허리에 달린 앞치마와 화려한 베일과 바디스를 들 수 있다. 귀족 여성들의 앞치마는 본래 지위가 낮은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착용하던 것을 귀족 여성들이 농장과 집안일을 직접 감독하게 되면서 귀족의 복식이 되었는데 이는 19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현하였다. 귀족 여성들의 앞치마는 그 자체로 주부의 미덕을 상징하는 동시에 값비싼 재료와 화려한 장식으로 고귀함과 부유함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헝가리 여성복식을 보면 보디스와 스커트부분이 동일한 재질로 구성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왕실과 상류 귀족계층에서는 붉은 벨벳바탕에 금사로 화려하게 수놓은 보디스의 콜셋을 겉으로 드러나게 하고 머리에서 베일을 길게 늘어뜨린 스타일이 유행하였다. 여기에 수놓인 모티프는 나뭇가지, 꽃, 잎사귀, 곤충 등의 문양이 어우러진
Fig. 25
와 같은 독특한 패턴이 만들어졌는데 이와 같은 패턴의 자수는 오스만-터키의 오랜 지배와 중앙아시아의 섬유공예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적인 요소와 서유럽의 바로크와 로코코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 두 문화가 결합한 독특한 헝가리만의 자수 패턴으로 표현된 것이다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2013)
.
- 3.4. 19세기 왕정복고시대 헝가리와 합스부르크 제국의 여성복식 비교
19세기 초반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이 헝가리에 가한 강한 압제는 헝가리 민족주의 의식 대두로 이어졌으며, 헝가리 민족복식을 통해 저항과 단합의 의미를 표현하였다.
Table 1
은 당시 헝가리와 합스부르크 제국의 여성복식을 비교한 것으로서 왕정복고시대 헝가리의 여성복식에서 머리장식은 파르타에 베일, 화려하게 자수하여 바디스의 콜셋을 겉옷화하고 바디스와 스커트를 다른 컬러와 소재로 사용한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비해 합스부르크 제국의 머리장식은 부피가 크고 과도하게 장식되었고 바디스는 스커트 부분과 같은 소재와 컬러를 사용하였다. 앞치마는 헝가리 여성복식 특유의 아이템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복식과 확연하게 구분하였고 자수 패턴은 합스부르크 제국이 로코코 스타일의 꽃 문양을 사용한 반면에 헝가리는 헝가리 특유의 오리엔탈적인 나뭇가지, 꽃, 잎사귀, 곤충 등의 문양을 사용하였으며 신발은 합스부르크 제국에서는 무용화 스타일의 에스카르팽(escarpin)이 착용되었고, 헝가리에서는 헝가리 스타일의 복식을 착용할 시에는 금속 소재의 힐이 달린 짧은 부츠를 착용하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왕정복고시대 헝가리 여성복식의 강한 민족주의적 특성을 엿볼 수 있다.
Comparison of Hungarian and Habsburg dynasty woman's costumes
| Headdress | Bodice | Apron | Pattern | shoes |
|
Hungry |  |  |  |  |  |
Image 1.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62. | Image 2.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66. | Image 3.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66. | Image 4.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63. | Image 5. Magnificent life of Hungarian aristocracy under the reign of the Habsburg dynasty, in the 17-19th century (2013), p. 53. |
Habsburg dynasty |  |  | × |  |  |
Image 6. The imperial style: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49. | Image 7. The imperial style: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49. | Image 8. The imperial style: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54. | Image 9. The imperial style: Fashions of the Hapsburg Era (1980), p. 49. |
4. 결 론
개별 민족의 전통적인 의상 문화는 오랜 기간 각 민족이 처해 있는 자연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되며, 그러한 다양한 주변 요인들에 의한 변화를 통해 민족 생활의 전반적인 사정에 가장 적합한 의상의 형태와 기능이 갖추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전통 의상은 단순한 의상의 개념이나 물질의 개념이 아니라 민족의 고유한 생활 감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그 민족이 영위하는 생활 전반의 요소들과 융합하게 되며 동일한 의상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간의 유대를 형성하게 하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Kwon, 2003)
. 이는 합스부르크 제국 압제하의 헝가리 민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왕정복고시대 유럽 상류층의 영향을 받은 헝가리 귀족 여성들은 화려한 자수나 구슬로 장식한 주름 소매의 블라우스, 레이스나 벨벳 테두리가 있는 긴 주름치마, 코르셋, 화려하게 장식된 몸에 딱 붙는 보디스(bodice), 자수와 레이스로 꾸며진 여성용 외투, 망토, 드레스 등 상류층의 권위에 맞도록 호화로운 장식과 부풀리고 과장된 복식을 선호하였지만 합스부르크 제국 지배하라는 특수한 시대상황 속에서 헝가리 귀족 여성들은 헝가리 고유의 복식을 고수함으로써 민족성을 표출하였다. 이러한 헝가리 여성복식의 특징은 헝가리 고유의 머리장식인 파르타와 베일, 바디스는 화려하게 자수하여 바디스의 콜셋을 겉옷화하고 바디스와 스커트를 다른 컬러와 소재로 사용한 점을 들수 있다. 앞치마는 헝가리 여성복식 특유의 아이템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복식과 확연하게 구분하였고 자수 패턴은 합스부르크 제국이 로코코 스타일의 꽃문양을 사용한 반면에 헝가리는 헝가리 특유의 오리엔탈적인 나뭇가지, 꽃, 잎사귀, 곤충 등의 문양을 사용하였으며 신발은 헝가리 스타일의 복식을 착용할 시에는 금속 소재의 힐이 달린 짧은 부츠가 특징적이다. 이러한 헝가리의 여성복식 스타일은 서유럽의 로맨틱 스타일에 헝가리 전통의상이 결합된 스타일로서 당시 헝가리의 특수한 시대상을 반영한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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