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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on Women’s Hair adornments of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Study on Women’s Hair adornments of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Fashion & Textile Research Journal. 2014. Oct, 16(5): 698-705
Copyright © 2014, The Society of Fashion and Textile Industry
This article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and conditions of the Creative Commons pution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 Received : June 06, 2014
  • Accepted : September 09, 2014
  • Published : October 3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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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임
은정 김
kimej0234@hanmail.net
Abstract
This study classifies features of women’s hair adornments with the functional and decorative aspect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and analyses in regards to their contemporary social and cultural surroundings. First, the treeshaped and Rod-like hairpin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are not as similar as to the hairpins found in China or other northern countries. It is farming lives and the wood-worship religion established the wearing of high-bun hair styles and tree-shaped hairpins. Second, high-bun hair styles and -shaped hairpins were basic hair decorations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Common high-bun styles finally became one of the cultures that reflected the contemporary thinking. High-bun hair styles, not excessively-decorated, became harmonized with the costume beauty and later developed along with with various -shaped hairpins. Third, Buyao (made of metals and based on flower subjects)in the Three Kingdoms Periodwas a unique style not been seen in the Han and Wei-jin-nam-bei-chao Period. Flowers in Buyao of the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show an elegant sway, which is not excessively-decorated that developed into unique features.
Keywords
1. 서 론
복식의 기원에서 장신구는 어떠한 복식요소보다 긴 연원을 가지고 있다. 고대사회 일수록 장신구의 역할은 광범위하여 미적 기능뿐만 아니라 상징적,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였다. 당시의 자연환경과 생활양식을 반영하였고, 정치, 경제, 종교 등 사회문화 전반의 복합적인 요소가 어울려졌던 문화 그 차체였다.
그 중에서도 여자 머리장신구는 머리를 수발하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시작되어 머리를 꾸미고, 나아가 사회적 신념과 상징성을 지니게 된다. 특히 두상은 인간의 신체부위 중 가장 윗부분에 있어 머리장신구의 사회적 의미가 부여되었고, 종류와 형태가 다채롭게 분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시대 남자 관모와 관식에 상응하여 사회적 표식수단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여자 머리장신구는 현존하는 문헌과 자료의 부족에 기인하여 다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조선시대 이전 여자 머리장신구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금속공예 측면에서 다루어지거나 금관을 비롯한 남자 금속제 장신구에 관한 연구의 일부분으로 언급되는데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는 관모를 대신하였던 최고의 머리수식으로 금을 비롯한 은, 청동 및 구슬, 진주 등 최고의 재료를 활용하여 당시의 금속공예기법이 망라된 예술품이자 복식요소였다. 신분과 지위, 상황에 따라 제도화된 복식에 걸맞은 머리모양과 어우러져 치장의 마무리를 담당하였던 머리장신구는 삼국시대 한국복식의 한 요소로 일정한 양식을 유지하였다. 아울러 당시대의 신념과 의미를 내포하면서 머리양식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형상화 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의 특성을 머리모양에 따른 기능적, 장식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른 형태적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대상은 머리모양을 형성함에 있어 사용되는 도구적 기능이 강조된 머리 장신구 채(釵)와 빗, 장식품으로써의 활용된 비녀(簪)와 보요(步搖)에 주안점을 두게 될 것이며, 삼국시대 머리장신구와 관련된 유물자료를 중심으로 문헌자료와의 상호보완을 통해 특성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2. 삼국시대 여자 머리모양과 장신구
- 2.1. 삼국시대 여자 머리모양
삼국시대 여자 머리모양은 기혼녀의 경우 남자의 상투와 같이 머리를 틀어 묶은 고계형(高髻形)이 많았다. 고계형 외에도 환계형(環髻形), 쓰개형, 다계형(多髻形) 등이 있었는데(Yim, 2012), 머리 정수리에 얹었던 고계에 둥근 환(環)을 더한 환계형, 가발(髦)이나 목재, 직물 등을 이용하여 가계(加髻)를 만들어 쓰고 벗을 수 있었던 쓰개형, 머리카락을 2, 3개의 가리마로 나누어 정수리에 여러 개의 계(髻)를 만들었던 다계형 등 다양한 머리모양도 고계형 머리양식에 바탕을 둔다.
남자의 상투와 같이 머리 정수리에 결발을 하였던 방식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공통이었다. Fig. 1 , 2 , 3 과 같이 고구려 도용 및 고분벽화, 신라 도용 등에서 확인된다. 백제 여자의 머리모양도 결혼 전에는 머리를 하나로 모아 뒤로 땋아 늘어뜨렸고, 결혼 후에는 양 갈래의 머리를 둥글게 만들어 머리 위로 올린 형태(Seo, 2003)라고 하여 고계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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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uryeo lady’s high-bun hair style. An Investigation on the Origin of Shilla Golden Crown (2008), p.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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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uryeo lady’s high-bun hair style. North Korea's Cultural Assets and Historic Sites (2000), p.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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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lla lady’s high-bun hair style. Korean Art by Historical Figure (1999), p. 111.
고계형은 머리를 땋지 않고 그대로 수발하여 올려 묶었다. 『수서(隋書)』(Wei, 636/1981)에서 백제나 신라의 부인들이 머리를 땋았다고는 하나 삼국시대 이후 한민족은 땋은머리 보다는 머리를 땋지 않고 수발하는 양식이 성행하였다. 땋은머리 즉, 변발(辮髮)은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이동을 하거나 사냥을 할 때 머리카락이 나뭇가지나 먼지 등과 얽히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발생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Kim, 1993). 한반도에 농경문화를 뿌리내렸던 삼국시대에는 벽화나 도용에 나타난 바와 같이 머리를 땋지 않고 올려 묶어 고계형 머리모양을 하였다. 여기에 신분이 높을수록 체를 더해 고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이러한 고계형 머리모양은 자연스럽고 간편하게 머리카락을 수발하는 방법으로 한민족 고유의 양식이다. 한민족은 묘족(苗族)과 함께 추결(椎結) 즉, 상투를 하는 민족(Shiratori, 1926)으로 중국이 동이족(東夷族)을 한족(漢族)과 구별 짓는 중요한 특징(Yoo, 1989)이었다. 삼국시대와 동시대인 중국의 한(漢),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 고분벽화에서도 확인되는 중국 여자 머리모양 중 고계형은 형태의 유사성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의 영향관계가 고려되기도 하지만, 중국의 고계형 머리모양은 원계(圓髻)로 검고 구름같이 부풀려져 규모면에서 달랐고 반드시 머리카락을 한가닥 늘어뜨려 장식하는 차이가 있었다(Yim, 2012).
오히려 삼국시대 여자 머리모양인 고계형은 수목신앙(樹木信仰)과의 관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신단수, 신수, 신목, 성수, 솟대는 같은 뜻의 단어로 큰 나무는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여 천과지를 잇는 중간 거처로써 신의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Yoon, 1995). 마을에 있었던 당산나무와 신목을 비롯해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 신단수 등을 통해 확인된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 각저총에는 곰과 호랑이가 나무 아래에서 씨름을 구경하는 모습이 있는데, 씨름은 고대 장례행사의 하나로 죽은 사람이 나무를 통해 천계(天界)에 진입하는 과정을 나타낸다(Lee, 2004). 한편 백제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족좌(足座) 윗부분에는 나뭇잎 모양의 금식(金飾)이 달린 철심이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족좌에 박힌 철심의 아래에는 연화문이 그려졌다. 전체적으로 보면 연화와 나무가 결합된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연화문이 그려지고 그 위에 수목이 세워진 이 도상의 의미는 피장자의 승천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Lee, 2004). 따라서 나무를 중심으로 하늘과 교류하려 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무에 대한 경외심은 농경문화를 바탕에 두는데, 농사를 짓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머리를 수발함과 동시에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하늘에 적당한 햇빛과 비를 내려달라는 염원을 머리모양에 표현하였을 것이다. 머리카락을 거꾸로 정수리에 세워 올리는 상투는 인간의 신체 가장 윗부분에 나무를 세우는 형상으로 하늘을 향한 염원과 소원을 표현하였다. 일찍이 한반도에서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수목신앙을 갖고 있던 한민족은 남자의 상투를 비롯하여 여자의 고계형 머리모양이 정착되었고, 주변국의 머리모양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중국 진시황제의 무덤에서 발견된 도용병사들의 변발을 겸한 북상투의 추결형은 진(秦)의 통일이전에 호복기사 생활을 하던 북방 기마민족의 풍속에서 기인한 것이다(Kwon, 2004).
머리 정수리에 결발하였던 고계형 머리모양은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의 형성과 양식에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땋지 않고 올렸던 머리모양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형의 비녀(釵)가 필요하였을 것이며, 장식을 위해서는 길이가 긴 일자형 비녀의 끝(簪頭)을 꾸며 뒤꽂이와 같이 고계에 꽂게 된다. 체를 더해 부풀어진 고계만큼이나 수식을 위해 일자형 비녀의 길이는 길어졌을 것이며, 잠두의 수식에 화려함을 더하였다.
- 2.2.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
고계형 머리모양에 바탕을 둔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는 고계형 머리모양을 안정되게 고정하고 수발하기 위한 기능성이 강조된 채와 빗, 풍성한 고계형 머리에 꽂아 수식을 더했던 장식성이 부각된 비녀와 보요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2.2.1. 채와 빗
삼국시대 머리카락을 땋지 않고 정수리에 고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머리카락을 단단히 잡아 줄 건류(巾類)와 더불어 ∩형의 비녀 즉, 채가 필요하였다. 현대에도 사용하고 있는 ∩형 비녀는 머리카락을 잡아주는데 안성맞춤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금속으로 만들어진 채는 유물로 빈번히 발굴되고 있다. 채는 ∩형 몸체에 특별한 장식이 없는 형태와 끝부분이 두 개 이상으로 나뉘어져 있으면서 채두(釵頭)에 장식이 되어 있는 형태가 있다(Choo, 1989). 비녀 끝이 장식된 채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예가 대표적인데, 묘주의 머리부분에서 발굴되어 무령왕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외의 삼국시대 유물로 발굴된 채는 대부분 소박하고 단조롭다. 당대(唐代) 절강장흥묘(浙江長興墓) 등에서 출토된 중국의 채가 매우 화려하며 길이가 30~40 cm에 이르러 장식을 위한 목적에서 활용된 것과 차이가 있다( Fig. 5 ). 삼국시대 채는 고계형 머리모양에 적합하게 기능성이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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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 of the Tang dynasty. Accessories for Women in the History of China (1988), p. 65.
채의 길이는 고구려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청동제 채를 비롯하여 5 cm 안팎이 주류를 이루는데(Joseon Remains and Relic Pictorial Book Compilation Committee, 2000), 안압지에서 출토된 채는 긴 것이 20 cm를 상회한다( Fig. 4 )(Gyeongju National Museum, 2009). 이는 고계가 매우 거대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20 cm의 채를 꽂을 수 있는 고계형 머리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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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 of the Shilla dynasty. Gyeongju National Museum (2009), p. 176.
삼국시대 채는 대부분 채두가 수식되지 않는 단순한 구조로 고계형 머리모양을 고정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청동제가 주로 사용되었다. 삼국시대 채는 고계형 머리를 수발하기에 가장 적합한 양식으로 머리장신구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빗의 기본적인 기능은 머리를 빗어 정리하는 것이지만, 시간의 추이에 따라 빗의 용도가 다양해졌다. 당대는 중국 부녀자가 빗을 꽂는 것을 좋아하여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고, 이는 당대 회화를 통해 쉽게 살펴볼 수 있다(Xing, 1995). 그러나 삼국시대는 빗이 머리를 수발하는 기능성 측면으로 부각되었는데, 다만 신라 흥덕왕대 복식금제에서 언급된 슬슬전소(瑟瑟鈿梳)를 통해 빗이 장신구로써 머리에 꽂고 수식되었을 것으로 본다. 또한 발해시대 고분인 안도동청 4호묘에서 출토된 뼈로 만든 빗은 발굴당시 머리에 얹은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빗이 부분적으로 장식을 위해 가식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Park, 1993). 빗을 머리장신구로 활용하는 것은 중국 당대 유행이 삼국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빗은 형태에 따라 소(梳)와 비(比)로 분류되는데, 『석명』(釋名) (Liu, Unidentifiable Period, Estimated at the end of the Later Han/2012)을 통해 살펴보면, 소는 이(齒)가 성긴 것을 말하고, 비는 촘촘한 것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가 성긴 소는 머리를 고정하거나 장식하는 역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장식의 목적으로 이용됨에 따라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발굴된 삼국시대 빗은 대부분 나무빗으로 옻칠을 하여 썩지 않고 발견되었다. 광주 신창동에서 발굴된 초기철기시대 나무빗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주 고분에서 발굴되었다(Kim, 2001). 장식이 더해지지 않는 단순한 양식이다. 특히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된 빗은 이가 닳은 것으로 보아 실제 사용되었다고 보고되고 있어(Gyeongju National Museum, 2009) 삼국시대 빗의 용도가 기능적 사용에 비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빗은 머리를 빗고 수발하는 기능적 역할이 주류를 이루지만, 통일신라시기 중국 당과의 활발한 복식교류로 인해 장식적 기능이 부분적으로 행해졌다. 특히 빗을 장신구로 활용하는 것은 고계형 머리모양과 관련이 있는데(Yim, 2005), 빗은 채와 달리 길이가 짧고 넓은 배부(背部)가 있어 무게감을 지탱하기 위해 풍성한 고계형 머리모양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따라서 고계형 머리모양이 사라졌던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에는 빗을 꽂아 장식하는 풍습이 완전히 쇠퇴한다. 중국에서도 원대(元代) 이르러 빗을 장신구로 활용하는 풍조가 퇴조하였다고 보는데(Xing, 1995) 이는 원대 개체변발을 비롯한 몽고족 머리모양과 관련이 깊다. 머리모양의 변화에 따른 머리장신구 빗의 장식적 사용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 2.2.2. 비녀와 보요
고계로 풍성하게 만든 머리모양을 장식하기 위해 활용된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는 비녀와 보요가 있다.
비녀는 채와 달리 끝이 하나로 뻗어 있는 일자형으로, 고계형 머리모양이 성행하였던 삼국시대에는 장식을 위해 고계에 꽂았다. 조선시대 쪽진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비녀와 기능과 역할을 달리한다.
부여 규암면 함양리에서 출토된 백제 은비녀는 한쪽 끝이 약간 구부러져 있고, 그 반대편에 다섯잎의 꽃바침이 장식된 금제장식이 붙어 있다. 끝에 옥류(玉類)를 끼워 장식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비녀의 몸체에는 작은 잎무늬를 새겼다(Kim, 1993). 고계에 꽂아 장식하기 위해 잠두를 화려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비녀의 사용이 확인된다. 특히 안악3호분의 묘주 부인과 귀부인의 머리모양은 고계에 둥근 환을 두른 환계형 양식인데, 붉은색의 비녀가 눈에 띈다. Fig. 6 과 같이 묘주 부인은 나무모양을 형상화한 비녀를 3개 이상 꽂고 있으며, 귀부인과 시녀는 장식이 없는 일자형 비녀를 여러개 꽂고 있다. 붉은색으로 표현된 비녀는 시녀가 머리를 묶은 건류와 확연히 구별되게 일직선으로 딱딱하게 그려졌는데, 귀부인의 이마 위, 시녀의 양 이마 끝부분에서 재차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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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namental hairpins that appear in Goguryeo ancient tomb murals(Anak Tomb No.3). North Korea's Cultural Assets and Historic Sites (2000), p. 39.
아울러 귀부인의 경우 환계에 묶어 여미고 딱딱하게 뻗어 내린 장식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비녀의 종류는 금속제 특히 금사와 같은 형태로 비녀를 만들어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무령왕릉을 비롯한 능산리절터 등에서 출토된 금사는 굵기와 방법이 다양하여(Buyeo National Museum, 2008) 이러한 금속공예기술을 바탕으로 안악3호분과 같은 다채로운 비녀가 제작될 수 있었으리라 본다. 삼국시대 유물에서는 살필 수 없으나, 중국 북경통현성관1호금묘(北京通縣城關1號金墓)에서 은으로 만든 비녀는 이러한 가능성을 확인시켜준다( Fig. 7 ). 삼국시대 보다 후대의 유물이기는 하지만, 금대(金代) 금, 은사로 만들어진 비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Zhou & Gao,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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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hairpin. Accessories for Women in the History of China (1988), p. 57.
일자형 비녀의 형태는 금속제의 경우 못처럼 생긴 경우부터 문양을 가식한 경우같이 다양하였을 것으로 본다( Fig. 8 ). 비녀는 머리에 꽂았을 뿐만 아니라 Fig. 6 의 고계 하단 붉은색으로 둘러진 것처럼 금, 은사와 같은 것으로 둥근 환을 둘러 가식하는 방법, 가계에 걸어 장식하는 방법 등 다양한 측면으로 삼국시대 비녀의 범주를 넓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사용된 비녀의 재질은 대부분 금속제일 것으로 추정되며, 출토된 유물로 확인되듯이 뼈나 상아 등도 함께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와 같이 머리를 수발하는 기능적인 면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삼국시대 비녀는 장식을 위해 가식되어 여러 개를 동시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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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hairpin. Accessories for Women in the History of China (1988), pp. 57-58.
보요(步搖)는 걸을 때 흔들리는 머리장식품이다. 『석명』(Liu, Unidentifiable Period, Estimated at the end of the Later Han/2012)에는 구슬을 달아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 머리장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로 착용되었다고 보고된 보요에 관한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헌은 알려져있지 않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벽화를 비롯한 소수의 유물자료를 통해 삼국시대 고유양식의 보요가 착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요는 선비족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과 한의 양식이 각기 달랐다.
보요관에 관한 중국의 기록은 『한서(漢書)』에 처음 보이는데, 여기에 “冠禪纚步搖冠, 飛翮之纓”이라고 나와 있다. 이는 방목사(方目紗)로 만든 관에 물총새 깃을 늘어지게 하여 걸을 때 흔들리게 한 것으로, 설명에 따르면 매미 날개와 같게한 것이라고 한다. 반면 금보요는 금으로 능선을 만들고 흰 구슬로 계수나무를 만들며 비취로 꽃잎을 꾸몄다(as cited in Park, 1993). 중국 장사마왕퇴1호분(長沙馬王堆1號墓)에서 출토된 비단그림에는 보요를 꽂은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Fig. 10 에 제시한 바와 같이 이마 앞쪽에 진주나 구슬과 함께 늘어뜨린 양식이다. 걸을 때마다 구슬이 흔들리면서 머리장식 효과를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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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ied painting from Changsha Mawangdui Tomb No.1. History of East Asia Costumes (2011), p. 15.
반면 Fig. 11 의 보요는 모용선비들이 쓰던 것으로 관모의 수식으로 쓰였다. 그래서 보요관식, 또는 보요식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모용선비의 묘에서는 3세기 말에 등장하여 4세기 전반까지 집중적으로 출토되다가 간헐적으로 5세기 초반까지 등장한다. 선비족이 세웠던 왕조인 전연, 후연, 북연이 도읍하였던 조양(朝陽)에서 주로 출토되는 지역적 특징이 있다(Lee, 2011). 형태를 보면 금판에 금선을 나뭇가지처럼 연결하고, 나뭇잎이 가득 달린 양식이다. 이는 독립적으로 착용할 수 없으며 관에 부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선비족의 보요는 위진남북조 시기 중국 보요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 중원지역인 산서대동사마금룡묘(山西大同司馬金龍北魏墓)에서 출토된 병풍 잔편들에서는 정수리에 계를 올리고 보요를 한 모습이 확인된다. 사마금룡묘가 중국 중원지역에 위치지만, 사마금룡이 진왕조와 연관되어 있으면서 북부의 선비족 지배하에 중원지역에 살았다(Park, 2007)는 사실에서 중국 보요가 선비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개지(顧愷之) «열녀도(列女圖)» 나타난 바와 같이 진대(晉代) 이르러서는 풍성한 고계형 머리에 보요를 꽂아 장식하였다( Fig.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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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ao. Accessories for Women in the History of China (1988), p.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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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ao. 5000 Years of Chinese Costumes(1995), p. 143.
삼국시대 보요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는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3호분 묘주 부인도이다. Fig. 9 와 같이 모사도를 그려 살펴보면, 이마 앞쪽에 장식을 늘어뜨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금사와 같은 금속제로 연결된 끝부분은 꽃모양으로 보이는데, 걸을 때 흔들림 효과가 있어 장식을 위한 보요일 것으로 추정된다(Kim,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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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ied painting from Anak No.3 tomb’s owner wife.
이러한 가운데 부여 하황리에서는 19 cm 정도 길이의 백제시대 은제유리공장식이 출토되었다( Fig. 13 ). 유리공의 윗부분에는 얇은 은판으로 된 네 잎사귀 장식을 붙였다. 유리공 상부에는 고리에 방울을 단 은제 막대가 연결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Buyeo National Museum, 2008)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비녀 끝에 구슬을 매단 보요의 일종으로 보인다. 『진서』(晋書)(Fang & Li, 626-649/1980)에서 영주(纓珠)를 귀히 여겨 옷에 매달거나 머리를 장식하고 귀로 늘어뜨린다고 하였던 구슬은 고계형 머리양식에 꽂혀 걸을 때마다 흔들리며 멋을 주었던 삼국시대 보요의 일종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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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glass ball. Baekje's Breathing and Golden Artistic Spirit, Art Metal Work (2008), p. 130.
또한 안압지에서 출토된 순금장식은 삼국시대 보요 양식을 추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Fig. 14 ). 금장식 2개는 금사로 연결되었고, 나머지 2점 중 1개는 금못이 꽂혀 있었다고 한다. 타원형 금구는 둥근테 모양인데, 어떤 물체의 테두리 장식이었던 것같다. 이 순금장식은 함께 사용된 일괄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확실한 용도는 알 수 없다(Gyeongju National Museum, 2009)고 하였다. 그런데 이는 Fig. 9 안악3호분 모사도와 같이 금테를 두르고 이마 앞쪽으로 늘어뜨렸던 보요로 재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또한 Fig. 8 과 같이 비녀의 생김새는 못 형태와 비슷한 경우가 많았고, 금사와 비녀, 꽃모양의 수식은 머리장신구 즉, 보요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나 선비족 보요와는 다른 금사와 꽃모양 양식이 갖춰진 고유한 양식의 보요가 삼국시대부터 머리장신구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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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ories made of pure gold. Gyeongju National Museum (2009), p. 175.
3.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의 특성
- 3.1. 수목신앙이 반영된 머리장신구
삼국시대 나무와 머리모양, 머리장신구와의 관계는 수목신앙에 기반한다. 고대사회에서 나무는 천과 지를 연결할 수 있는 통로로 인식되어 신성시 되었고, 신체의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여 머리장신구와 함께 당시대의 신념을 반영하였다. 남자의 관모였던 금관과 금동관이 여자 머리장신구와 마찬가지로 당시대의 사상을 근저에 깔고 있음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수목신앙에 근거한 대표적 관모인 신라의 금관은 계림의 시조 김알지를 탄생시킨 생명의 나무를 형상화 하였다. 나뭇가지마다 ♤모양으로 도톰하면서도 뾰족하게 돋아있는 것은 생명을 의미하여 살아있는 나무를 뜻한다(Lim, 2008)고 하였다.
남자의 관모에 상응하는 여자의 머리장신구에서도 수목신앙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3호분에 나타난 비녀의 장식은 나무모양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끝부분은 원형과 ♤모양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렇게 끝부분이 마무리되는 양식은 한국적인 수지방법으로 고조선 초기부터 시작되어 한반도와 만주지역 대부분에 걸쳐 한민족의 고유양식으로서 널리 사용되었다(Park, 2008).
나무모양의 독특한 비녀는 중국을 비롯한 다른 북방민족의 유물에서 살필 수 없는 고유한 형제로 보인다. 농경생활과 함께 나무에 대한 경외심을 갖으며 중국보다 먼저 고계형 머리모양을 정착시켰고, 나무모양 머리장신구를 착용하였다. 나무모양 머리장신구는 외래요소가 많다고 알려져 있는 안악3호분에서 발견되지만, 장신구의 형상이 중국 고분벽화를 비롯한 유물에서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모습을 띤다. 묘주 부인의 환계형 머리모양도 동시기 중국 중원의 고분벽화에서 유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Yim, 2012)에서 머리모양과 머리장신구의 고유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고계형 머리모양과 수목사상, 나무모양 머리장신구는 금관, 요패, 이식 등 금속제 복식장신구와의 밀접한 연관관계 속에서 탄생된 한민족 고유양식으로 추정된다. 나무모양으로 장식된 비녀를 머리에 꽂아 화려함을 표현하였고, 민족의 뿌리와 근원을 담아내고 있다.
- 3.2. 고계형 머리모양에 활용된 다양한 채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는 머리양식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남자의 상투가 관모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 것처럼, 삼국시대 보편적 머리모양인 고계형 머리모양은 다양한 채를 발달시켰다.
대전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농경문청동의기(Lee, 2012)에 나타난 남자 상투에서 알 수 있듯 수목신앙 및 농경문화에 바탕을 둔 고계형 머리모양은 이에 적합한 머리장신구를 발달시켰다. 이는 남자의 상투를 보호하고 가리기 위해 절풍을 썼고, 립의 경우에도 상투만을 가리는 정도의 대우에 넓은 양태를 더한 양식으로 상투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였다. 이는 서양모자가 두상을 에워싸며 전면적으로 쓰여지는 것과 차이가 있다. 금관도 속관 절풍과 외관으로 구분되어 상투를 보호하고 감쌌다. 남자의 상투가 관모의 양식에 영향을 미쳤듯이 여자의 고계형 머리모양은 채의 활용과 형식에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고계형 머리모양과 채는 삼국시대 머리양식을 꾸미는데 근간이 되었다. 고계형 양식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삼국시대 여자 머리모양은 당시대의 신념과 어우러지면서 형성된 복식문화의 한 부분이다. 농경문화, 수목신앙과 연관된 머리모양은 경외의 대상이 되면서 과도한 확대나 치장을 하지 않았고 복식미와의 조화를 이루었다. 동시대 중국의 고계형 머리모양이 과도하게 확대되어 금, 은을 비롯한, 진주나 비취, 옥 등의 화려한 장식을 하였던(Li, 1995) 것과 대조적이다. 경쟁적으로 하늘로 솟아 올랐던 중국의 고계형 머리모양은 신분이나 권위를 나타내고자 하는 심리적인 측면과 아울러 다양한 머리장신구를 삽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당대 강소단도(江蘇丹徒)에서 발굴된 채의 길이는 30~40 cm로 이를 꽂을 수 있는 고계형머리모양의 풍성함과 화려함을 짐작할 수 있으며, 당대 계의 높이가 2척(尺)이고 앞쪽에 꽂은 상아로 된 빗의 크기는 손크기 정도였다는 기록(Zhou & Gao, 1998)은 머리장신구의 사치가 최고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계형 머리모양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성에 초점을 두었던 삼국시대 채의 형태는 과도한 장식과 과장을 배제한 한민족의 전통 복식미와 맞닿는다. 고계형 머리양식이 갖는 보편적 가치 속에 실용적이면서도 단아하게 장식할 수 있었던 채는 가장 대표적인 삼국시대 머리장신구로 폭넓게 활용되었다.
- 3.3. 고유양식의 보요
삼국시대 보요는 한, 위진남북조, 선비족의 그것과 형식을 달리하면서 형성되었다. 흔들림에 의한 장식으로 대표되는 보요는 중국의 풍부한 문헌기록과 유물자료에 비해 삼국시대의 발굴자료가 뒷받침되지 못하여 정확한 양식을 구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흔들림에 의한 장식은 조선시대 용수철 끝에 벌, 나비, 봉(鳳)을 부착하여 착용자가 움직일 때마다 떨리도록 하는 떨잠으로 명맥이 이어지기까지 지속성을 갖고 있으며, 머리양식을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장식미를 연출하는 머리장신구로 삼국시대부터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 보요는 수목신앙과 관련한 나무 및 나뭇가지 형상과 연관이 깊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대(漢代) 보요는 물총새 깃을 늘어지게 하여 매미 날개와 같은 모습을 하거나 구슬을 꿰어 늘어뜨렸고, 선비족의 보요는 나뭇가지를 뻗어 나가게 하고는 그 끝에 나뭇잎을 매단 점, 머리에 바로 꽂을 수 있는 보요식이 아닌, 관에 꿰매거나 매달아 고정시키는 관 장식이었다(Park, 2008)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후 위진남북조시기에는 선비족의 보요관에 영향을 받아 사슴, 소, 매미 등의 문양이 보요와 결합되면서 양식에서의 변화를 보인다. 전량(前凉) 감숙사심용묘(甘肅汜心容墓)에서 출토된 매미문 금관 보요식은 여성의 묘로 알려져 있어 여자 머리장신구로 사용된 보요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Lee, 2004). 즉, 중국의 보요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 매미, 사슴 등과 결합된 양식적 특징을 보인다면, 삼국시대 보요는 나무 및 나무형상, 꽃모양 등으로 차별화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3호분 묘주 부인도에 보이는 보요는 금사와 같은 금속제가 여러 개 독립적으로 가늘게 이어져 끝부분에 꽃모양으로 마감되어 형태적 측면에서 한, 위진남북조 및 선비족의 그것과 다르다. 또한 중국의 보요가 나뭇가지의 끝에 진주를 장식하거나 나뭇잎을 매단 양식과도 차이점을 보인다.
꽃을 주제로 과장되지 않으면서 단아한 흔들림을 표현한 보요는 삼국시대 고유한 양식으로 보인다. 오랜 연원을 갖고 있는 꽃을 머리에 꽂는 삽화풍습은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꽃은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여자 장신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모티브(motive)가 되었으며, 형식의 변형이 무궁무진하였다. 따라서 앞서 보요일 것으로 추정된 안압지에서 출토된 은제유리공장식의 연결부분이나 순금장식도 꽃을 다양하게 형상화 하였다.
보요에 관한 논의는 아직 추론적 단계이다. 하지만 삼국시대와 동시기 중국 한대부터 위진남북조, 당에 이르기까지 보요가 성행하였다는 논리에 기대고, 선비족의 보요와 견주어 삼국시대 보요를 해석해 나가는 것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백제 무령왕릉의 관모장식이 화염문이 아니라 초화문에 근거를 두었다는 점(Lim, 2008), 조선시대 보요로 전승된 떨잠이 꽃모양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처럼 삼국시대 보요는 한민족의 신념과 사상을 고려한 고찰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 단아한 흔들림을 표현하였을 여자 머리장신구인 보요는 수목신앙, 농경문화와 함께 한민족이 갖고 있었던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복식 및 기타 장신구와 조화롭게 발달되었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고유양식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4. 결 론
본 연구는 고대사회에서 여성의 미적욕구를 충족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중요한 복식요소의 하나로 발전하였던 여자 머리장신구에 대한 적극적인 고찰을 하였다. 특히 문화산업의 발달, 지역마다 전통축제의 활성화, 한국적 이미지와 지역성을 나타낼 수 있는 문화상품 개발이 무엇보다 요구되고 있어 고대 복식문화 연구의 학문적 성과 및 실증적 작업에 활용될 수 있는 연구축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의 특성을 머리모양에 따른 기능적, 장식적 측면에서 채와 빗, 비녀와 보요로 분류하고,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른 특성을 분석하였다. 또한 여자 머리장신구는 당시대의 신념과 의미를 내포하면서 머리양식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첫째, 나무모양의 독특한 비녀는 중국을 비롯한 다른 북방민족의 유물에서 살필 수 없는 고유한 형제로 보았다. 각 민족마다 갖고 있는 다양한 토템 중 한민족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무에 대한 경외심을 갖으며 중국보다 먼저 고계형 머리모양을 정착시켰고, 나무모양 머리장신구를 착용하였다. 나무모양머리장신구는 외래요소가 많다고 알려져 있는 안악3호분에서 발견되지만, 장신구의 형상이 중국 고분벽화를 비롯한 유물에서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모습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
둘째, 고계형 머리모양과 채는 삼국시대 머리양식을 꾸미는데 근간이 되었다. 고계형 머리모양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시대적 사상과 어우러지면서 복식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농경문화, 수목신앙과 연관된 고계형 머리모양은 경외의 대상이 되면서 과도한 확대나 치장을 하지 않았고 복식미와의 조화를 이루어 다양한 채를 활용하여 꾸며졌다.
셋째, 꽃을 주제로 과장되지 않으면서 단아한 흔들림을 표현하는 보요를 장식한 것은 삼국시대 고유한 양식으로 보았다. 꽃은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여자 장신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으며, 한국 고유의 보요양식과 연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파악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주제는 지금까지 한국복식사에서 심도있게 조명되지 못했던 고대 한국 여자 머리장신구에 대해 부족하나마 학문적 논의를 시도한 것이나, 유물에 대한 직접적인 현장조사를 할 수 없었던 점, 방대한 고고학적 자료를 모두 섭렵할 수 없었던 한계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제한점이 추후 비판적 연구로 보완되길 기대하며, 후행연구로 뒷받침하고자 한다.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2011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1-35C-G0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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