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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yeing Culture of Royal Garmen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Dyeing Culture of Royal Garmen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Fashion & Textile Research Journal. 2013. Apr, 15(2): 192-201
Copyright ©2013, The Korean Society for ClothIng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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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ceived : August 08, 2012
  • Accepted : March 03, 2013
  • Published : April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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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Young Kim
soonyoung1.kim@gmail.com
Abstract
This study explores the culture surrounding the dyeing of royal garmen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finding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several dyes were used to color royal garments, such as jicho , honghwa , danmok , simhwang , sambo , goehwa , chija , and namjong . Mordants such as maesil , hwanghoemok , yeohoe , and baekban were also used with the dyes. Second, the Sangeuiwon (尙衣院) was the department in charge of the purchasing of dyes and the entire dyeing practice. It was the Seonhyecheong (宣惠廳) and the Hojo (戶曹) who provided revenue to the Sangeuiwon through a wongong , regular tribute, and a bokjeong (supplementary tribute). Additionally, additional dyes, if found to be insufficient, could be provided by the Hojo. Every year the Hojo provided jicho , honghwa , and danmok to the Sangeuiwon , and sometimes imported namjong from China. Third, royal garments were, in most cases, dyed by the Sangeuiwon ’s professional dyers and court ladies belonging to the sewing department in each palace. Naenongpo (內農圃) eunuchs were in charge of the indigo crops of each palace. Finally, more dye was used in royal garments than in the clothes of commoners to obtain a deeper shade of color. In addition, dyers tried to achieve a clear and vivid tone in their garments. Silk which absorbed color relatively easily, was dyed inside the palace using an ice vat filled with fresh indigo leaves; however, cotton was difficult to dye and was sent to professional indigo dyers outside the palace.
Keywords
1. 서 론
조선 후기의 왕실 복식은 단아하고 소박한 일반의 평상복과는 달리 매우 화사하고 세련된 색채미를 자랑한다. 남자 복식의 경우 왕의 조복인 강사포와 상복인 대홍 곤룡포를 비롯하여 세자의 상복인 자적 용포 등에서 화려한 색채의 위용을 볼 수 있고, 여자 복식의 경우 왕비의 적의, 내명부의 원삼, 활옷, 당의 등 각종 예복에서 다양한 아름다운 색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염료와 염색의 역사에 관한 연구는 선행 연구(Kim, 1986; So, 1984; Yang, 1988)에서와 같이 시대적 배경이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 시대를 다룬 경우가 많았으며, 염료의 종류와 염색 기법에 관한 포괄적 고찰이 주를 이루었다. Kim(2008)의 연구는 조선 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연구 대상이 남 품종과 남염(藍染)의 기술적 특성에 한정된 것으로서 연구 관심이 왕실 복식에 사용된 염료와 염색은 아니었다. 본 연구는 조선 후기의 왕실 복식에 색을 입히기 위해 어떤 염료가 필요했으며, 그 염료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조달되고, 어떻게 염색에 사용되었는지를 고찰하여 조선 후기 왕실 복식의 염색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데 연구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구체적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후기 왕실 복식에 사용된 염색 재료의 종류를 살펴보고, 염색 재료의 공급 체계를 이해한다. 둘째, 염색 장인의 소속과 신분 및 생산 활동을 고찰하고, 왕실 복식 염색의 기술적 특징을 분석한다. 본 연구는 문헌적 연구로서, 연구 자료는 조선 후기 왕실복식의 염료 및 염색에 관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사서류이다.『조선왕조실록』(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2005),『승정원일기』(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2000-2011),『비변사등록』(1617-1892/1990),『일성록』(1752-1800/1998-2007) 등의 편년 사료를 비롯하여,『경국대전』(Hanguk Jeongsin Munhwa Yeonguwon, 1485/1985), 『육전조례』(Seoul Daehakgyo Kyujanggak, 1867/1999) 등 조선시대 법전류,『상방정례』(Sanguiwon, 1750-51),『만기요람』(Seo & Sim, 1808/1971),『탁지준절』(late 1870s) 등 조선후기의 재정 관련 사료와『규합총서』(Yi, 1809/1975) 등 기술 서류가 주요 연구 자료이다. 이 가운데 특히 본 연구는 왕실복식의 염색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므로『상방정례』의 염료와 염색 관련 기록을 비중 있게 분석했다.
『상방정례』는 영조 26-27년(1750-51), 왕실 물품의 절용을 목적으로 왕의 교명에 의해 간행된 상의원의 제식 준거이다(Lee, 2012). 상의원은 조선시대의 왕실 복식뿐만 아니라 왕실에서 사용했던 모든 물품들을 조달하고 관리했던 기관이다.『상방정례』는 곧 상의원의 규칙이라 하겠다. 지금까지『상방정례』는 선행 연구(Kim, 1993; Kim, 2007; Lee, 2012)에서 왕실 복식의 수요와 공급, 착용 사례, 편찬 과정과 특징 등을 고찰하기 위해 활용된 바 있으나, 왕실 복식의 염색 문화 연구에 활용된 경우는 없었다. 이에 본 연구는『상방정례』와 그 외 관련 문헌 자료의 기록을 토대로 조선 후기 왕실 복식에 사용된 염색재료의 종류와 공급 체계, 염색 장인의 소속과 신분 및 생산활동, 왕실 복식 염색의 기술적 특징 등을 분석하여 조선 후기 왕실 복식의 염색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2. 염색 재료의 종류와 공급 체계
- 2.1. 염색 재료의 종류
『상방정례』권1 연례진상, 원공, 복정, 입염식 기록과 권3 세자궁 책례시 관례시 면복 및 강사포의 입염차 기록을 근거로 조선 후기 왕실 복식에 사용된 염료의 종류를 정리해 보면 Table 1 과 같다. 염료로써 지초, 홍화, 단목, 심황, 삼보(三甫), 괴화, 치자, 향남종, 당남종의 기록이 있으며, 매염제로써 매실, 황회목(노린재나무), 여회(藜灰, 명아주 재), 백반, 여회(蠣灰, 굴껍질 재)의 기록이 있다. 지초와 황회목, 매실은 자적색 염색의 재료였으며, 홍화, 여회(명아주 재), 매실은 대홍색 염색의 재료였다. 단목, 심황, 백반은 번홍색 염색의 재료였고, 단목과 백반은 또한 홍색 염색의 재료이기도 했다. 삼보와 황회목은 유청색과 초록색 염색의 재료였으며, 여회(굴껍질 재)는 남전(藍靛, 니람)의 재료였다.
염료 식물과 매염제의 특징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초( Lithospermum erythrorhizon Sieb. et Zucc.)는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산야나 초원에 자생하는 지치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Dyes and mordants documented in the『Sangbang Jeongr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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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es and mordants documented in the『Sangbang Jeongrye』
(Jo et al., 2000). 적자색의 뿌리를 자색 염료로 사용한다. 홍화(Safflower, Carthamus tinctorius L.)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원산으로 고대에 인도,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화과의 두해살이 풀이다(Jo et al., 2000). 한반도에서 재배가 가능하며, 주황색의 꽃잎을 대홍과 분홍 등 홍색 계열의 염료로 쓴다. 단목( Caesalpinia sappan L.)은 소목, 소방목이라고도 불리는데, 동인도와 말레이반도가 원산이며, 높이 약 5 m의 콩과의 늘푸른 작은 큰키나무이다(Jo et al., 2000). 한반도에 생육하지 않으며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등지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여 사용해 온 염료이다. 적황색 목재 부분을 번홍, 홍, 목홍 등 홍색 계열의 염료로 쓴다. 심황( Curcuma longa L.)은 울금이라고도 하며, 인도, 중국 등 열대 및 아열대 아시아 원산으로 생각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Jo et al., 2000). 연황색의 괴근(덩이뿌리)을 염색용으로 사용해 왔으며, 단목과 함께 사용하여 번홍의 염료가 된다.
삼보는 삼뵈의 차자 표기로 추정된다(Kim, 2010). 삼뵈는 조개풀(Arthraxon hispidus (Thunb.) Makino)로 억새와 비슷하게 생긴 벼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Jo, 2007). 『일성록』정조 2년(1778) 3월 15일의 기사와『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1759/1994) 삼방의궤 감결질 기록에서 삼보가 도금을 대신하는 효과를 내거나 두석구철(豆錫鉤鐵. 황동, 놋쇠)을 개염하기 위한 용도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삼보가 황색계열의 색을 염색하기 위한 재료였음을 알 수 있다. 삼보는 남초(쪽풀)과 함께 사용되어 유청과 초록 등 녹색 계열의 염료로도 사용되었다. 괴화는 중국 북부지방 원산이며, 콩과의 낙엽지는 넓은 잎 큰키나무인 회화나무( Sophora japonica L.)의 꽃봉오리를 말한다(Jo et al., 2000). 한국과 일본에서도 자라며 꽃봉오리를 황색 염료로 쓴다. 치자는 열대 및 아열대 식물로 꼭두서니과의 늘푸른 넓은 잎 떨기나무인 치자나무( Gardenia Jasminoides Ellisf.)의 열매이다(Jo et al., 2000). 열매를 황색 염색용으로 사용해 왔다.
『상방정례』에는 두 품종의 남종(藍種, 쪽씨)이 등장하는데 향람종과 당람종이 바로 그들이다. 향람종은 조선 토종의 쪽씨이며 당람종은 중국 원산의 쪽씨를 말한다. 당람의 수확 기록이『산가요록』(Jeon, 1459/2004)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이미 당람이 조선에서 재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규합총서』에 의하면 당람은 쪽잎이 둥글고 두틀두틀하며 염색성이 좋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람은 쪽잎이 둥글고 두터운 요람의 품종으로 현재에도 한국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다. 향람은 조선에서 이용된 또 하나의 남 품종인 숭람(崧藍)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숭람은 고서에서 청대(靑黛), 대청(大靑), 전(靛) 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는데(Kim, 2008), 이들은 모두 오늘날 대청이라 부르는 품종의 다른 이름들이다. 대청(Isatis tinctoria L.)은 십자화과(겨자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이다. 현재 한국에서 대청은 남염 식물로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매실은 중국 원산으로, 장미과의 낙엽 지는 넓은 잎 큰키나 무인 매화나무( Prunus mume Sieb et. Zucc.)의 열매이다(Jo et al., 2000). 매실은 신 맛이 강하여 예로부터 산성 매염제로 사용되었다. 산알칼리 정도에 따라 색조가 달라지는 지초의 염색이나, 알칼리 상태의 홍화 염액을 중화시키거나 연지를 만드는 용도 등에 이용된다. 황회목은 노린재나무라고도 불리우며, 노린재나무( Symplocos chinensis Lour.)는 노린재나무과의 낙엽지는 넓은 잎 떨기나무 또는 작은 큰키나무이다(Jo et al., 2000). 나무를 태워 얻은 재로부터 알칼리 용액을 만들어 지초와 삼보의 염색시 매염제로 이용했다. 여회(藜灰, 명아주재)는 명아주를 태운 재이다. 명아주( Chenopodium album L. var. centrorubrum Makino)는 명아주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이다(National Institute of Biological Resources, 2011). 명아주 잿물은 홍화 염색시 홍화의 붉은 색소를 추출하기 위해 필요한 알칼리 용액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백반은 광물성인 명반석(明礬石)을 가공 처리한 결정체이다. 각종 천연 염색에 많이 이용되는데 특히 단목 염색시 홍색의 발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매염제였다. 여회(蠣灰)는 굴껍질을 태운 재를 지칭하며 남 염료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재료였다.
- 2.2. 염료 공급 관련 기관과 공급 주체
조선 후기 왕실 복식의 염색을 책임진 기관은 상의원이었다. 따라서 염색에 필요한 재료의 구비도 기본적으로 상의원의 책임 하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상의원에서 필요로 하는 염색 재료는 공납 제도에 의해 마련되었다. 공납은 지방의 토산물을 현물로 내는 세금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여 공물을 현물 대신에 당시 교역의 수단이던 물품 화폐, 즉 쌀과 포 등으로 거두는 대동법이 실시되었다. 따라서 상의원에서 필요로 하는 염색 재료의 구비를 위해 물품 화폐를 지급한 정부 관청이 따로 존재했는데 이들이 바로 선혜청과 호조 등이었다.
선혜청은 1608년 대동법의 실시에 따라 설치한 관서로 대동미와 대동포, 대동전 등 조선후기 세입의 대부분을 관리한 재정 기관이다. 호조는 6조의 하나로 조선시대 호구, 공물, 부역등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상방정례』권1 항례 본원원공에서 상의원의 공안(貢案,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적은 예산안)에 포함된 염색 재료의 목록을 확인 할 수 있다. Table 2 에 정리된 바와 같이 상의원은 선혜청과 호조 등으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아 대부분의 염색 재료를 공급받았다.
상의원에서 필요로 하는 염색 재료를 구매하여 조달해 준 집단은 상의원 소속의 공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인은 조선후기 대동법 실시 이후, 왕실이나 중앙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사서 납부하던 어용 상인을 말한다. 공인은 소속 아문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었다.『일성록』정조 10년(1786) 12월 14일의 기사,『비변사등록』영조 4년(1728년)5월 21일 기사에서 상의원 공인(尙衣院 貢人) 21인, 상방 공물 주인(尙方 貢物主人) 등이 확인됨에 따라 조선 후기 상의원에 소속된 공인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상의원 소속 공인 이외에 채색계 공인들에 의해 염료의 일부가 조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만기요람』재용편 3 호조공물 각전계별무에 채색계가 각종 안료와 함께 염료의 일종인 심황을 별무 공물로 바친 기록이 있다.
- 2.3. 염료 공급 방식
상의원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은 원공(元貢), 복정(卜定), 연례진배(年例進排), 연례연무(年例燕貿) 등의 방식을 통해 조달되었다. 원공은 공안(貢案)에 들어 있는 원래의 공물, 즉 본디 정하여져 있는 공물을 말한다.『상방정례』의 본원원공에 기록된 물품 가운데 염색 재료를 정리한 내용은 Table 2 와 같다. 이 표에서 상의원이 원공으로 마련된 재원으로 구매한 염료와 매염제의 종류 및 단가, 총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Table 2 에서 공물의 단가 및 배정 지역은『만기요람』재용편 1 각공 선혜청 57공 상의원, 재용편 2 각공 균역상평진휼3청 17공 상의원의 물목을 참조하여 추가한 내용이다.
원공에 포함된 물목으로는 홍화, 지초, 매실, 괴화, 황회목, 삼보, 명아주재, 남종, 백반, 굴껍질재가 있다. 이들은 모두 상의원 공안에 들어 있는 원래의 공물이었으므로 왕실 복식의 염색에 있어서 항시적으로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재료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재료들은 대홍, 자적, 유청, 초록, 남 등의 색을 염색하기 위한 것들이며 이들 색이 왕실 복식에 가장 많이 사용된 색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공에 포함된 대부분 물종의 재원을 공급한 관서는 선혜청이었다. 지초와 명아주재의 경우에는 일부 예산을 호조가 담당하고 있었으며, 홍화의 경우에는 균역 상평 진휼 3청이 일부 예산을 공급하고 있었다.『만기요람』재용편 1 각공 작공에 “궁에 상납하는 각양(各樣)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선혜청이 균역청, 상평청, 진휼청과 융통하여 거행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선혜청이 재정 관련 기관들과 함께 예산을 조율하며 상의원에 재원을 공급했음을 알 수 있다.
『만기요람』에는 신홍화, 백반, 매실, 남종, 지초, 황회목, 명아주재,
Unit cost and amount of each dye and mordant supplied through the regular tribute [元貢], documented in the『Sangbang Jeongrye』*Currency is rice [米]**SHC is the Seonhyechong [宣惠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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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 cost and amount of each dye and mordant supplied through the regular tribute [元貢], documented in the『Sangbang Jeongrye』 *Currency is rice [米] **SHC is the Seonhyechong [宣惠廳]
괴화, 굴껍질재의 단가 및 배정 지역이 기록되어 있다. 단가는『상방정례』의 기록과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백반 매근 8두 영남”과 같이 그 내용이 너무 소략하여 물종과 배정지역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에 관하여 다음의 기사를 참조할 만하다.『일성록』정조 10년(1786) 1월 5일 비변사가 공시인의 폐막을 보고한 기록을 통해 상의원과 공인, 공물의 거래 방식을 알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상의원 상돈피계(常皮契) 공인이 진상하는 돈피 68령의 값으로 오승포8동1필과 사승포 6동14필을 받았는데, 이 포는 함경도에서 상의원으로 올려 보내서 공인들에게 내준 것”이라 했다. 이에 근거하여『만기요람』의 소략한 기록 방식을 해석해 본다면, 예건대 “백반 매근 8두영남”은 “영남에서 공물로 거둔 대동미(쌀)를 상의원 공인에게 지급하여 백반을 구매하게 했는데 그 단가는 1근에 쌀 8두로 한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염색재료 가운데 예산이 가장 많이 배정된 것은 매실이다. 매실의 단가는 가장 고가의 염료라 할 수 있는 홍화에 조금 미치지 못한 정도이나 매실의 총량이 압도적으로 많은데서 비롯된 결과이다. 매실은 염색뿐만 아니라 음식 등과 같이 다른 재료로도 왕실 수요가 많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의원은 원공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염색 재료를 공급 받았다. 복정은 규정된 공물 이외의 별공(別貢)이 있을 때 상급 관서가 하급 관서에, 또는 하급 관서가 각 민호에 강제로 부과한
Amount of each dye supplied through the supplementary tribute [卜定], documented in the『Sangbang Jeongr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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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unt of each dye supplied through the supplementary tribute [卜定], documented in the『Sangbang Jeongrye』
Amount of each dye supplied through an annual tribute by the Hojo [戶曹] and an annual import by the Hojo, documented in the『Sangbang Jeongr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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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unt of each dye supplied through an annual tribute by the Hojo [戶曹] and an annual import by the Hojo, documented in the『Sangbang Jeongrye』
공물을 말한다.『상방정례』의 복정에 기록된 물품 가운데 염색 재료를 정리한 내용은 Table 3 과 같다. 상의원은 복정을 통해 각 지방으로부터 일정량의 홍화와 치자를 현물로 직접 공급 받았다. 홍화의 경우 배정이 함경도 지역에 고루 되었으며, 상급 관서인 함경 감영의 할당량이 가장 많았다. 치자는 제주도 지역에 고루 배정되었다.『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홍화는 함길도, 평안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등 전국에서 고루 산출되었고, 치자는 제주목과 경상도의 산물로 비교적 따뜻한 남부 지방에서 주로 산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홍화는 대홍염색에 많은 양이 필요했으므로 복정을 통해 추가적으로 공급받았고, 치자는 원공 물종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필요시에 복정을 통해 부정기적으로 공급받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의원에 물품이 부족한 경우 호조에서 매년 보충하였는데 이를 호조연례진배라 한다. 국산으로 충당되지 않는 물종의 경우에는 호조로 하여금 중국 사행(使行)시에 무역해 오게 했는데 이를 연례연무라 한다.『상방정례』의 호조연례진배(戶曹年例進排)와 연례연무품단자(年例燕貿稟單子)에 기록된 물품 가운데 염색 재료를 정리한 내용은 Table 4 와 같다. 호조연례진배 물종으로 홍화, 지초, 단목이 있다.『만기요람』재용편 4 호조각장사례(戶曹各掌事例)에 의하면 호조가 매년 정월에 상의원의 보고에 의해 연례적으로 홍화, 지초, 단목을 지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염료를 매년 호조 예산에서 상의원에 지급한 것을 보면, 왕실 복식에 역시 대홍색과 자적색의 염색과 단목을 이용한 홍색의 염색이 많이 행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단목은 본래 조선의 산물이 아니어서 주로 동남아시아나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해 온 품목이었다.『만기요람』재용편 4 호조각장사례에 의하면, 단목은 동래부로부터 해마다 호조에 봉납되어 필요한 부서에 지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단목은 조선산이 아니고 상의원 원공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으므로 전량을 호조에 의존했던 것이다.『탁지준절』입염물종에 의하면 단목의 단가는 홍화의 약 1/20 정도에 해당하는 비교적 저렴한 염료였다(Kim, 2004).
호조가 중국에서 무역해 온 물종 가운데 염색 재료로는 당남종과 심황이 있다. 당남종과 심황 역시 단목과 마찬가지로 조선에서 산출되지 않는 품목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무조건 무역해오기 보다는 먼저 호조에서 공인으로 하여금 내입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검토하여 무역량을 최소화하려 했다.『일성록』정조 2년(1778) 10월 10일 희정당에서 차대(왕과의 대화)를 행할 시 약방 무역과 상방 무역에 관한 논의 기록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3. 왕실 복식의 염색 문화
- 3.1. 염색 장인의 소속과 신분
조선 후기 왕실 복식의 염색을 책임진 기관은 상의원이었다. 상의원은 왕실 복식과 궁중의 각종 재화 등 왕실 소용물품을 공급하는 일을 관장하는 아문이다.『경국대전』공전경공장에 의하면, 상의원에는 각각의 전문 분야에 따라 소속된 장인들이 많았는데, 염색 및 채색 관련하여 홍염장 10인, 청염장 10인, 초염장(草染匠) 4인, 하엽록장 2인으로 총 26명의 장인이 있었다. 홍염장은 홍화와 단목 등의 홍색 염색을, 청염장은 남염을 전문적으로 했던 장인이다. 초염장은 초립을 염색하거나 장식하는 장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엽록장은 초록색의 안료를 만드는 장인이다. 하엽록의 경우 중국 수입품에 의존하지 않고 조선 초기부터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여 단청과 불화의 안료로 많이 이용되었다(Chun, 2005). 따라서 안료 가운데 유일하게 공장이 존재했던 것이다. 홍염장, 청염장, 하엽록장의 경우, 상의원 뿐 아니라 제용감에도 각각 10인, 20인, 2인씩의 장인들이 있었으며, 초염장의 경우에는 상의원 뿐 아니라 공조에도 6명의 장인이 배속되어 있었다. 같은 분야의 염색 장인이라 하더라도 소속 관서가 달랐으며, 이들은 각 관서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의 염색을 책임졌다.
그런데『경국대전』에 기록된 상의원 및 제용감 등의 염색장인 제도가 조선 말기까지 변함없이 동일하게 시행되지는 않았다. 고종대에 편찬된『동국여지비고』(1865-83/1956) 2편 한성부 공장에 의하면, “내자시 내섬시 사도시 예빈시 제용감 전설사 장악원 사포서 양현고 도화서는 지금 공장이 없으며, 그밖의 여러 관서는 명색이 새로운 것과 예전대로 있는 것이 서로 차이가 있고 인원수의 더하고 덜한 것이 일정하지 않다”고 하여 제도가 변했음을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는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과 함께 관영 수공업이 해체되고 민영 수공업이 발달했던 시기이다. 관수품의 염색을 책임졌던 제용감 소속의 염색장인들도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서 어느 시점에 폐지되어 19세기 후반에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의원은 사정이 약간 달랐다. 제용감 소속 염장(染匠)이 폐지된 것과 달리 상의원에는 염장이 19세기 말까지 존속했다. 심지어 신규로 추가된 염장도 있었다. 1895년 상의사 소속의 염남장(染藍匠) 조봉완이 내장원에 제출한 소장 기록에서 왕실 복식의 염색을 위한 남염 전문 장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Kim, 2010). 고종 4년(1867)에 간행된『육전조례』에서는『경국대전』에 없던 ‘화피입염장(靴皮入染匠)’의 존재도 확인된다. 화피입염장은 의대색(衣色)에 소속된 다른 염장들과는 달리, 가죽 신발을 만드는 장인들과 함께 금은색(金銀色)에 소속된 염색 장인이었다.
한편, 상의원의 염장들이 전체 왕실 복식의 염색을 다 맡았던 것은 아니었다.『상방정례』의 기록을 토대로 볼 때, 이들은 주로 탄일과 절기에 따라 진상되는 각 전과 궁의 일상복과 왕실 복식 가운데 의례복의 염색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탄일과 절기에 따라 진상되는 일상복 이외에 항시적으로 필요한 일상복의 염색은 각 전과 궁에서 직접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의원에서 진상한 옷감으로 평상복을 제작하는 일은 궁에서 사역하는 궁녀가 담당했는데, 특히 의복 제작은 침방과 수방에 소속된 궁녀의 책임이었다(Kim, 2007). 이들 궁녀들이 염색도 함께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경종실록』경종2년(1722) 8월 14일, 침방 소속의 궁녀가 남염의 일로 두 차례 궐 밖을 드나들었다는 기사 내용에서 이를 유추 할 수 있다.
특히 남염의 경우에, ‘상의원의 남염’과 ‘각 전과 궁의 남염’이 구분되어 있었던 정황이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된다.『상방정례』권1 항례 각 전과 궁의 연례진상물종에는 향남종과 당남종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각 전과 궁에서 어떤 식으로든 남 재배에 관여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또한『승정원일기』숙종 26년(1700) 6월 21일, 예조가 ‘궐내 염남’은 내고에서 전담하여 진배하고 ‘상방 남빙’은 서빙고에서 담당하게 하기를 청한 내용이 있다. 이 기사에서 분명히 ‘궐내 염남’과 ‘상방 남빙’을 구분해 놓고 있다. 내고, 즉 내빙고는 자문감에 속해 있었던 조선 왕실 전용의 얼음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서빙고에는 국왕에게 올리는 음식, 영빈할 때 쓰는 음식, 그리고 백관에게 나누어 줄 얼음 등을 보관했다. 이로 볼 때 ‘궐내 염남’은 각 전과 궁에서의 남염을 말하는 것이며, ‘상방 남빙’은 상의원에서 남염시 필요로 했던 얼음을 지칭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남염의 경우 상의원의 남염과 각 전과 궁의 남염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염 뿐만 아니라 홍염도 각 전과 궁에서 직접 행해졌다. 『일성록』정조 2년(1778) 2월 12일, 정조가 상의원에 분부하여 홍화 100근과 매실 10근을 혜경궁에 들이도록 명한 기록이 있다 정조는 5월 13일에 다시 호조에 명하여 홍화 100근, 매실 5두를 혜경궁으로 들이라고 분부했다. 가례 준비를 위한 것이었는데, 이들 기록으로 볼 때 각 궁에서 홍화의 염색도 행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육전조례』공전 상의원에는 의대색(衣襨色)이 관장하는 물목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홍화, 지초, 삼보, 명아주재, 괴화, 황회목, 매실, 치자, 단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상의원 소속 하위 부서인 의대색에서 각 전과 궁에 지급하는 대부분의 염료를 관리했던 것이다.
- 3.2. 남전(藍田, 쪽밭)의 운영과 관리
상의원 원공에는 남종(쪽씨)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남염의 경우, 염료를 바로 공급받아 이용했던 다른 염색과 달리 씨앗의 상태로 공물을 받아서 이를 재배하여 염색에 이용했다. 그렇다면 남 재배는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이 의문과 관련하여, 조선 후기에 왕실 소용을 위한 상의원 남전(쪽밭)과 관청 소용을 위한 제용감 남전이 따로 운영되고 있었던 정황들을 찾을 수 있었다.『인조실록』인조 6년(1628) 9월 24일 기사에서, 개성부에 제용감 소속의 청대전(靑黛田, 쪽밭)이 있음을 밝히고 있고,『비변사등록』숙종 37년(1711) 1월 23일 기사에서 황해도 송도부(즉 개성부)에 호조와 상의원에 소속된 청대전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상의원의 남전은 조선 전기부터 계속 있어왔던 것이었다. 『중종실록』중종 17년(1522) 7월 3일, 상의원의 관원이 전관(箭串, 전곶) 남전이 홍수에 잠겨 다른 밭을 달라고 호조에게 청했더니 준 밭이 모두 조각 밭이어서 남 심기에 알맞지 못하여 민간의 밭을 사서 남전으로 하기를 청한 내용의 기사가 있다. 전관(전곶)은 오늘날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 일대로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역이다. 1895년 각도각군소장에는 상의사 소속의 염남장이 훈련원 대청의 뒷밭을 다년간 쪽풀 경작지로 운영했다는 기록도 있다(Kim, 2010). 훈련원 대청은 오늘날 서울시 중구 을지로 일대이다. 상의원 소속 남전이 한성부 내에서는 도성내 궁궐 근처나 한강변에 있었으며, 지방에서는 한성과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개성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비변사등록』숙종 37년(1711) 1월 23일, 영조 5년(1729) 12월 13일의 기사에서 내농포 전답과 상의원 남전 등 소출이 왕실 소용인 전답의 경우, 우가(牛價)와 서초군가(鋤草軍價) 등 각종 세금이 면제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상의원 남전에서의 남 재배와 수확은 내농포(內農圃)의 책임하에 있었다. 내농포는 조선시대 환관들이 궁중납품을 목적으로 채소를 재배하던 밭, 또는 그 관서를 말한다. 위치는 창덕궁 돈화문 밖 동편에 있었다.『승정원일기』정조 15년 4월 4일 기사에서, 여름에 쪽 수확기가 되면 내농포 환관들의 책임하에 쪽풀이 남전으로부터 궐내로 운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쪽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종종 내관들의 횡포도 있었다. 쪽 수확기
Amounts of dyes and mordants used to dye each color, documented in the 『Sangbang Jeongrye』,『Gyuhap Chongseo』,『Takji Junjeol』*SJ is the『Sangbang Jeongrye』**GC is the『Gyuhap Chongseo』***TJ is the『Takji Junj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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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unts of dyes and mordants used to dye each color, documented in the 『Sangbang Jeongrye』,『Gyuhap Chongseo』,『Takji Junjeol』 *SJ is the『Sangbang Jeongrye』 **GC is the『Gyuhap Chongseo』 ***TJ is the『Takji Junjeol』
한 달여 동안 내관들이 길에 널린 오물을 수거하는 일에 각부(部)의 하인인 서원(書員)과 사령(使令)을 불법적으로 동원하기도 했던 것이다.
남전의 관리가 내농포의 환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실제 쪽 농사는 누가 지었을까?『영조실록』영조 30년(1754) 4월 24일, 왕이 내농포의 백성을 후원의 내포로 불러 밭을 갈게 하고 이를 친림하여 보았다는 기사에서 내농포의 전답이 일반 백성들에 의해 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의원 남전의 관리도 내농포 소관이었으므로 남의 재배와 수확에 실질적 노동력을 제공한 사람들은 일반 백성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 3.3. 왕실 복식 염색의 기술적 특징
『상방정례』의 기록을 토대로 볼 때, 상의원에서 주로 염색한 색은 자적, 대홍, 번홍, 홍, 유청, 초록이었다. 피염물은 숙초, 토주, 정주 등의 견직물과 견사 종류였다. 직물은 필 단위로, 실은 근 단위로 염색이 이루어졌다. 왕실 복식의 염색이 민간 및 관청에서의 염색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상방정례』의 기록을『규합총서』및『탁지준절』과 비교해 보았다. Table 5 는『상방정례』권1 입염식과 권3 세자궁 책례시 및 관례시,『규합총서』염색제법,『탁지준절』입염물종의 기록을 비교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자적토주의 염색법과 관련하여 세 문헌을 비교해 보면,『상방정례』에 기록된 지초의 양이『규합총서』나『탁지준절』에서 보다 1~2근 더 많다. 왕실 복식의 염색에 사용된 염료의 양이 민간이나 관청 소용보다 더 많음을 볼 때, 같은 자적색이라 하더라도 왕실 복식을 위해서는 더 짙은 색을 염색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상방정례』대홍토주의 염색법을『탁지준절』다홍토주와 비교해 보면,『상방정례』에 기록된 홍화의 양이『탁지준절』에서 보다 3근 더 많다. 왕실 복식의 대홍색은 자적색과 마찬가지로 관청에서의 다홍색보다 더 짙은 색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홍화 염색의 매염제를 비교해 보면,『상방정례』에는 매실, 『탁지준절』에는 오미자가 기록되어 있다. 단가로 볼 때 오미자는 매실보다 저렴한 물종이었다.『만기요람』재용편1 선혜청 57공 제용감의 오미자 단가를 보면 “매근 5두 호남 강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Table 2 에서 매실의 단가가 “매근 10두”였으므로 매실이 오미자보다 2배 비싼 셈이다. 매실이나 오미자는 잿물에서 추출된 홍화 염액을 중화시키거나 연지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재료였다. 왕실 복식의 염색에 사용된 매염제는 동일한 효과를 낸다 할지라도 고가의 양질의 상품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상방정례』에 기록된 대홍토주와 대홍면포의 염색 재료를 비교해 보면, 동일한 1필에 사용되는 염료 및 매염제의 양이 토주가 면포보다 더 많았다. 동일한 재료로 동일한 색을 염색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피염물의 종류에 따른 염착 정도를 고려하여 필요한 재료의 양을 정확하게 사용하여 낭비가 없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상방정례』번홍정주와 홍주사(홍색 견사)의 염색 재료는 홍화가 아닌 단목이다. 번홍정주 1필에 사용된 단목 8량은 대홍토주에 필요한 홍화의 근수와 비교해 볼 때 1/24에 해당하며, 대홍면포에 필요한 홍화의 근수와 비교해 보아도 1/18에 불과하다. 홍주사에 필요한 단목은 대홍사에 필요한 홍화의 근수와 비교해 볼 때 1/13에 해당한다. 즉, 번홍색 혹은 홍색 염색에 필요한 단목의 양은 대홍색 염색에 필요한 홍화의 양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은 양이었다. 이는 번홍 혹은 홍이 대홍처럼 많은 홍색 색소가 필요한 짙은 붉은 색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 단목의 염색 효율이 홍화에 비해 우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목은 저렴하고 염색 효율이 우수한 염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왕실 복식의 안감용 직물을 염색하는 데 사용된 염료였다(Kim, 2004). 이해 반해 홍화는 주로 왕실 복식의 겉감용 직물을 염색하는데 사용되었다. 단목과 홍화의 용도가 구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목과 홍화의 위계는 조선후기의 성리학자 윤증의 시문집인『명재유고』(Yun, 1732/2006-2011)에서도 엿볼 수 있다.『명재유고』20권 숙종 39년(1713) 4월 6일, “국가에서 대신(大臣)을 대우하는 데에 아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지만, 국산의 목면과 모시를 쓰고 염색 또한 단목(丹木)을 씁니다. 이에 담긴 은미한 뜻은, 장복(章服)은 평소 입던 것을 쓰고 그 외에는 중국산 비단을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법을 만든 뜻이 이처럼 엄격합니다”라고 하여 조신 복식에 단목을 사용하는 것이 신하로서 절용하는 행위의 하나임을 밝히고 있다. 홍화와 단목의 위상은 왕실 복식에서는 겉감용과 안감용이라는 용도의 차이로, 군신 복식에서는 왕복과 신하복이라는 신분의 차이로 대표되고 있다. 즉, 왕실 복식의 염색에서는 동색 계열의 색을 내는 염료라 할지라도 용도에 맞게 적절한 재료를 선택하여 다른 톤의 색조를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상방정례』에는 유청토주와 초록토주, 초록사의 염색 재료로서 삼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황염 재료인 삼보 단독으로 초록 계열의 색을 염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록 계열은 반드시 남염과의 복합염을 통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기록에 왜 남염 재료가 빠져 있을까? 이는 왕실 복식의 염색을 위해서 굳이 남염 재료의 예산을 관련 관청으로부터 배정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남염의 경우 상의원 남전에서 수확된 쪽풀을 바로 공급받아 염색에 이용했기 때문이다. 유청토주와 초록토주에 사용된 삼보의 양을 비교해 보면 그 양이 동일하다. 이로 보아 왕실복식의 유청색과 초록색은 남염의 정도 차이에 의해 색조가 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궁중에서 남염은 주로 생엽염법이 많이 행해졌다. 조선 시대에 얼음은 여름 음식 등에 필수적인 귀한 물품이었다.『승정원일기』인조 15년(1637) 6월 6일과 8일, 숙종 26년(1700) 6월 21일, 29년(1703) 6월 5일의 기사에는 빙고에 보관중인 얼음의 재고가 부족하니 절용할 것과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을 청한 기록이 등장하는데, 절약 논의가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소비를 줄일 것을 청하는 용도가 백관에게 나누어 주는 용도와 남빙(藍氷)의 용도였다. 즉 남 염색시에 사용되는 얼음의 양이 매우 많았던 것이다. 이는 곧 여러 가지 남염법 가운데 궁중에서 많이 이용된 방식이 생엽염법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남의 생엽염법에서 색의 발현을 위해서는 얼음이 필수적인 재료였기 때문이다. 생엽염법은 여러 남염법 가운데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고 명주와 같은 견직물에 염색하기 가장 쉬운 방식이므로 상의원의 청염장 뿐 아니라 각 전과 궁의 궁녀들에 의해서도 많이 행해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궁중에서 생엽염법이 많이 행해졌지만, 발효염법이 전혀 행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상의원 원공에 굴껍질재가 포함된 것을 볼 때 상의원 소속의 청염장, 즉 염남장들에 의해서 남발효염법이 행해졌을 것으로 본다. 조선 후기의 남 발효염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남즙의 잿물 발효염법과 전(靛, 니람) 염색법이다(Kim, 2008). 명아주재와 황회목이 상의원 원공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상의원에서 남 염색시 필요한 잿물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전(니람) 제조에 필수적인 굴껍질재 역시 상의원 원공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남염 장인들이 전을 제조하여 보관했다가 생엽을 이용할 수 없는 시기에 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남염의 경우 때로는 민간의 염색 수공업자에게 노임을 주고 염색을 맡기기도 했다.『상방정례』권1 입염식에는 청면포(靑綿布)의 청염가(靑染價)가 기록되어 있는데, 청면포의 필당 염색 가격은 전(錢) 3전이었다. 면포는 왕실보다는 민간의 복식에 많이 사용되는 옷감이었으므로 민간의 전문 남염업자에게 맡기는 것이 더 수월했을 것이다. 조선 후기 한성에는 전문적인 남염 수공업자가 여럿 존재했으며(Kim, 2010), 그들의 고객층은 때로는 왕실이기도 했다.
『상방정례』의 입염식에는 황염(黃染) 방법에 관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삼보와 괴화가 상의원 원공 물종에 포함되어 있고 치자가 복정 물종에 포함된 것을 보면, 궁중에서도 황색계열(예를 들어 송화색과 같은 옅은 황색)의 염색이 행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입염식에 황염법의 기록이 빠진 것은 조선 왕실에서 황색을 중국 황제의 색으로 여겨 경외시한 탓으로 보인다.『궁중발기』등 조선 말기의 왕실 복식 기록에서 송화색 저고리의 기록이 많이 보인다(Lee, 2003).『탁지준절』입염물종에도 괴화와 치자의 기록이 있는데, ‘황색입염소용(黃色入染所用)’이라고 밝히고 있다. 괴화와 치자는 식물성 섬유와 동물성 섬유 모두에 쉽게 염색 가능한 실용적인 황색 염재였다.
4. 결 론
본 연구는 조선 후기 왕실 복식에 사용된 염색 재료의 종류와 공급 체계, 염색 장인의 소속과 신분 및 생산 활동, 왕실 복식 염색의 기술적 특징 등을 분석하여 조선 후기 왕실 복식의 염색 문화를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후기 왕실 복식의 염색에 사용된 염료는 지초, 홍화, 단목, 심황, 삼보, 괴화, 치자, 향남종, 당남종 등이며, 매염제는 매실, 황회목(노린재나무), 여회(藜灰, 명아주 재), 백반, 여회(蠣灰, 굴껍질 재) 등이었다.
둘째, 조선 후기 왕실 복식의 염색 및 염색 재료의 구비를 일차적으로 책임진 기관은 상의원이었으며, 상의원에 필요한 재원을 공급한 정부 관청은 선혜청과 호조 등이었다. 염색재료를 구매하여 상의원으로 조달해 준 집단은 상의원 소속 공인들과 채색계 공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상의원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은 원공, 복정, 연례진배, 연례연무 등의 방식을 통해 조달되었다. 원공에 포함된 재료들은 홍화, 지초, 매실, 괴화, 황회목, 삼보, 명아주재, 남종, 백반, 굴껍질재 등이었다. 이들은 대홍, 자적, 유청, 초록, 남 등의 색을 염색하기 위한 것들로서 이들 색이 왕실 복식에 가장 많이 사용된 색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홍화와 치자는 복정을 통해 추가적으로 공급받았고, 홍화, 지초, 단목은 매년 호조에서 연례적으로 추가 공급받았다. 홍화와 지초는 원공에 포함된 물종임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으로 공급받은 것을 볼 때, 왕실 복식의 염색에서 가장 수요가 많았던 염료였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조선 전기 상의원에는 염색 관련하여 홍염장 10인, 청염장 10인, 초염장 4인 등 전문 장인들이 존재했다. 조선 후기는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과 함께 관영 수공업이 해체되어 간 시기였지만, 상의원의 염색 장인들은 19세기 말까지 존속했다. 왕실 복식의 염색은 상의원의 염장들과 각 전과 궁의 침방 소속 궁녀들에 의해 행해졌다. 상의원 염장들은 탄일과 절기 등 특별한 날의 진상 복식과 의례복의 염색을 맡았으며, 각 전과 궁의 궁녀들은 평상시의 일상복 염색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염색 업무를 나누어 효율성을 도모한 것이다.
다섯째, 남염의 경우, 다른 염료와 달리 남종(쪽씨)을 공물로 받아 상의원 소속 남전(쪽밭)에서 재배하여 염료로 이용했다. 상의원 소속 남전은 한성부 내에서는 궁궐 근처나 한강변에 있었으며, 지방에서는 한성과 거리가 가까운 개성에 위치해 있었다. 상의원 남전은 소출이 왕실 소용이었으므로 세금이 면제되었으며, 남 재배와 수확 등의 관리는 내농포의 책임 하에 있었다. 왕실 복식의 염색 및 염색에 필요한 재료의 구비를 일차적으로 책임진 기관은 상의원이었으나, 상의원의 업무는 재정기관인 선혜청과 호조, 남전 관리부서인 내농포 등 정부의 다른 관서와의 긴밀한 협조 체계 하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여섯째, 왕실 복식 염색의 기술적 특징을 살펴본 결과, 왕실복식의 염색에서는 관청이나 일반민의 복식보다 더 짙은 색이 선호되었으며, 고가의 양질의 재료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필요한 재료의 양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남용이 없도록 했으며, 신분과 용도에 맞는 적절한 염료가 선택적으로 이용되었다. 왕실 복식의 남염은 주로 생엽염법이 많이 행해졌으나 필요시에는 발효염법이 행해지기도 했으며, 면포의 경우 궐 외의 민간 남염업자에게 위탁되기도 했다. 황염의 경우, 궁중에서는 주로 송화색과 같이 옅은 황색의 염색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상의원의 염색장들은 진하면서도 순수한 색조를 얻고자 했으며 또한 재료를 남용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인들의 색에 대한 선호도 및 전통 사회의 삶의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한국인들은 맑고 순수한 색조를 선호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검소함은 삶의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였다. 왕실의 염색 문화에서 드러나는 순수한 색의 선호와 절용의 미덕은 오늘날의 천연 염색 활동에서도 새겨볼 만하다. 한국의 전통색은 단순히 천연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재료가 가진 색소들을 맑고 순수하게 발현시키고자 하는 노력과 염색 과정에서 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하여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뒤따를 때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된다 하겠다.
본 연구는 조선 후기 왕실 복식의 염색 문화를 연구한 것으로서 연구의 내용이 주로 왕실 복식에 사용된 색의 생산, 즉 염색 활동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왕실 복식의 색의 사용, 즉 소비 활동에 관한 부분은 미처 다루지 못했는데 이는 후속 연구에서 다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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