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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formation of Genre Convention in Cinematic Content Regarding Narrative and Characters of Stone
Transformation of Genre Convention in Cinematic Content Regarding Narrative and Characters of Stone
Journal of Korea Multimedia Society. 2015. Mar, 18(3): 419-428
Copyright © 2015, Korea Multimedia Society
  • Received : February 03, 2015
  • Accepted : February 09, 2015
  • Published : March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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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 김
Dept. of Film Studies, Dongeui University
kimiseok@deu.ac.kr

Abstract
Stone is a hybrid genre movie in which two different film genres coexist; one is a gangster movie, the other Baduk movie. This film deals with a relationship between an old gangster boss and a young Baduk player. The coexistence of two different worlds becomes a reason for a unique ambiance of this film, because Stone is dynamic and brutal as much as static and meditative. Firstly,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the narrative structure and characters of this film comparing with conventions of gangster movie genre, especially ‘jopok film’ of Korean cinema. Secondly, we examine characters of this film and their relationship. Since the economic crisis under the IMF structure, a great part of korean gangster movie has represented the weakness of the fatherhood and the disorganization of family. However, in Stone , the friendship between two heroes, Namhae and Minsu, turns to a father-son relationship. In this way, Stone transformed conventions of film genre.
Keywords
1. 서 론
프랑스어로 종류, 유형 등을 가리키는 genre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장르라는 개념은 오늘날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대부분의 영상콘텐츠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장르는 ‘관객을 안정적으로 끌어들이고 확보함으로써 상업적 손실을 줄일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1] 이것이 멀게는 1900년대 초의 할리우드 영화사들로부터 가깝게는 현대의 게임 개발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상콘텐츠 제작자들이 장르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특정 장르의 영상콘텐츠는 일정한 이야기 관습 및 시각적 스타일을 따르고 있으며, 유사한 소재나 주제, 세계관 등을 가지고 있다. 관객 혹은 소비자는 장르적 관습이 제공하는 친숙함을 즐긴다. 하지만 동시에 관객 혹은 소비자는 자신이 선택한 영상콘텐츠가 때때로 장르적 관습을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친숙하면서도 독창적인 영상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는 창작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특히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콘텐츠 역시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서 다양한 종류로 결합되고 변형되어 발전되어 간다. [2] 뛰어난 창작자들은 때로는 약간의 변주를 통해, 때로는 낡은 장르를 버리고 새로운 장르로 옮겨 감으로써, 때로는 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왔다.
조세래 감독의 <스톤>(2014, Fig. 1 )은 갱스터 영화(혹은 조폭영화)에 바둑 이야기를 접목시킨 혼성장르의 영화다. 은퇴를 앞둔 조직 폭력배 두목과 삶의 목표를 상실한 젊은 바둑 기사 사이의 우정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다룬 이 영화는 조세래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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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poster.
<스톤>은 스타일적인 측면에서는 조폭영화에 가깝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바둑의 비중이 더 크다. <스톤>과 유사한 시기에 개봉한 조범구의 <신의 한 수>(2014)가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형적인 케이퍼 무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영화라고할 수 있다. 반면, <스톤>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르의 영화다. 조직 폭력배 집단의 두목과 떠돌이 청년이라는 두 중심인물, 악행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만다는 서사구조, 비장미를 강조하는 스타일 등은 갱스터 영화 혹은 조폭 영화의 규범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민수와 남해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바둑 이야기는 갱스터 영화의 관습적 틀을 계속 무너뜨린다. 이 논문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처럼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재창조되는 지점들이다.
2. 기초 자료 및 선행연구 검토
<스톤>은 2013년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되었으며, 2014년 6월 12일 극장에 개봉되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자료에 따른 <스톤>의 개봉 성적은 아래와 같다 [3] .
<스톤>이 상업적으로 실패한 가장 큰 이유로는 개봉 시기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제작비가 5억 원에 불과한 저예산 영화다. 반면, 이 영화가 개봉한 6월은 한 해 중 가장 경쟁이 치열한 여름 영화 시장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특히 2014년 한국 영화 여름 시장에서는 <군도 ; 민란의 시대>, <명량>,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해무> 등 수백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들이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홍보비용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저예산 영화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국제영화제 등에서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하여, 제66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제18회 후쿠오카아시안 영화제 등에 초청되었으며, 15회 부산영화평론가협 회상에서는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The Box office record of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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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x office record of Stone
이 영화를 연출한 조세래 감독은 1957년생으로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사실 그의 데뷔는 좀 더 앞당겨질 수도 있었다. 조세래 감독은 정지영 감독의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와 <하얀 전쟁>(1992)으로 각각 춘사영화제 각본상과 제31회 대종상 각색상을 수상하면서 충무로의 관심을 받았던 영화인이었다. 평소 바둑에 관심이 많았던 조세래 감독은 1993년 바둑영화 <명인>이라는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준비한 바 있다. 하지만 상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화의 제작은 무산되었고, 이후 조세래 감독은 영화계를 떠나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충무로를 떠나 사업가로 전업한 감독은 중고차포장회사, 요식업 등 다양한 직종을 오가며 사업을 벌였으며, 한때는 기원을 경영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1997년에는 구한말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3대에 이르는 바둑꾼들의 승부를 다룬 소설 『역수』를 발표했는데, 바둑평론가 이광구는 이 소설에 대해 “바둑을 이야기의 소품 정도로 다루지 않고 바둑과 정면 대결한 (최초의) 소설”이라고 평하였다. [5] 뒤늦게 영화계로 돌아 온 조세래 감독은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완성한 직후인 2013년 11월 25일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따라서 <스톤>은 조세래 감독의 첫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로 남게 되었다.
이 영화에 대한 연구물로는 일부 영화비평지나 일간지에 실린 짧은 비평문이 대부분으로, 부산영화 평론가협회가 발간한 비평집『영상문화』17호에 실린 강내영의 비평문「<스톤>, 이 딸의 미생(未生)들에게 바치는 헌사」가 사실상 이 작품에 대한 유일한 선행연구라고 할 수 있다 [6] . 강내영의 글은 선행연구들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 영화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돕는 길잡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만 글의 제목이나, 이 영화를 ‘완생의 꿈과 희망을 찾아 몸부림’치는 ‘살아 있지만 죽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말해주듯이 그의 글은 바둑을 매개로 한 메시지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톤>이라는 개별 작품에 대한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과는 달리 장르 영화, 특히 이 영화가 부분적으로 속해 있는 갱스터 영화나 조폭영화에 대한 선행연구는 상대적으로 충분한 편이다. 따라서 본논문은 기존의 갱스터 영화 혹은 조폭 장르 영화와 <스톤>의 차이점을 설명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 영화의 서사구조와 등장인물, 그리고 이 영화를 지탱하는 세계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영화가 기존 영화의 장르 규범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3. 장르의 혼종성
갱스터 영화는 1930년대 이후 오랜 기간 전 세계에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영화 장르다. 할리우드 영화계로 한정해서 살펴보면 갱스터 영화 최초의 전성기는 1930년대였다. 이 시기에 발표된 윌리엄 웰만의 <공공의 적 The Public Enemy >(1930), 머빈 르로이의 <리틀 시저 Little Caesar >(1930),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 Scarface >(1932) 등은 갱스터 영화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Fig.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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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Enemy, Little Caesar, Scarface.
1930년대 갱스터 영화의 등장은 미국의 대공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강관수에 따르면 1930년대는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낙관주의적인 담론이 위기에 처한 시기’로 갱스터 영화는 ‘성공을 향한 도전보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통해서 미국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이 불가능했던 당시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7] .
한국영화계에서도 갱스터 영화의 전성기는 IMF 금융위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갱스터 영화는 ‘조폭 영화’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조직 폭력배나 범죄 집단을 소재로 한 조폭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IMF 시대’라고 불리던 2000년대 초반부터다. 특히 2001년한 해에만 <친구>,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등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조폭영화의 제작편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런 기세는 한풀 꺾이게 된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윤종빈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박훈정의 <신세계>(2013) 등 해마다 화제작들이 발표될 정도로 조폭영화는 감독은 물론 관객이나 제작자들로부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장르다. 이런 사실들을 감안할 때 조폭 영화는 ‘한국영화 스크린에서 가장 친숙한 도상’ [8] 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갱스터 영화는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는 영화 장르이기도 하다. 갱스터 영화의 주인공들은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방법, 즉 폭력을 통해서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반사회적인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비합법적인 수단에 의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속한 사회가 정상적인 방식으로 욕망을 달성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를 비롯해서 갱스터 영화의 전설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칼리토 Calito’s Way >(1993) 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민자들인데, 이런 현상은 토머스 샤츠가 지적한 것처럼 “제도화된 소외와 계급차별이 존재하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 특히 이민자들과 그 후예들이 합법적으로 권력과 성공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9] .
곽현자에 따르면 한국의 조폭영화 속 주인공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단순한 불량배나 범죄 조직으로 묘사되었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미국 고전 갱스터 영화의 주인공들과 같은 범죄자•사업가의 위치에 도달’하게 된다. 이처럼 조직 폭력배들의 ‘비즈니스’가 합법적인 사업의 외양을 갖추면서 한국의 ‘조폭누아르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한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조직의 넘버 2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조직원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송능 한 감독의 <넘버 3>(1997)나 비리 공무원 출신의 인물이 오히려 조직 폭력배들보다 더 능수능란하게 불법적 비즈니스를 해결하고 마침내는 조직을 접수하는 과정을 그린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등은 조폭영화의 틀을 빌려 한국 사회의 맨 얼굴을 폭로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고든 윌리스가 촬영을 담당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는 갱스터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에 매우 깊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갱스터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강렬한 명암 대비와 사치스럽고 세련되게 꾸며진 세트, 영화 전반에 넘쳐흐르는 비장미, 향수를 자극하는 소품과 의상 등은 이후 많은 갱스터 영화들의 모방 대상이 되었다. 한국의 조폭영화들도 예외가 아니다. 곽경택의 <친구>,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 박훈정의 <신세계> 등 대표적인 조폭영화들 속에서 <대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세래 감독의 <스톤>은 일견 갱스터 영화 혹은 조폭 영화의 규범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 남해는 조직 폭력배의 두목으로 성인 오락실과 나이트클럽 운영, 사채업, 재개발 용역 사업 등 한국의 조폭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법적인 ‘비즈니스’를 통해 조직을 꾸려나가고 있다. 영화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인물들의 대사 등을 통해 유추해 볼 때, 그는 한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잔혹한 인물이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민수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프로 입단 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한 뒤 그는 기원에 머물면서 사기 바둑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도박에 중독된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도움은커녕 오히려 짐만 되는 존재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개미지옥 같은 현실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민수가 남해가 속한 조직폭력배들의 세계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이런 종류의 영화 속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할 수 있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청년과 조직 폭력배 두목이라는 인물 설정만큼이나 이 영화의 서사 구조나 시각적인 스타일 역시 조폭 영화의 규범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두목, 조직들 간의 이권 다툼,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 믿었던 부하의 배신, 그리고 두목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 영화의 메인 플롯은 수많은 조폭 영화들 속에서 반복되었던 이야기다. 또한 명암 대비가 뚜렷한 화면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도박장,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 허공을 가르는 각목들과 멋진 발차기 등으로 꾸며진 액션 장면들, 그리고 영화 전반에 흘러넘치는 비장미 등은 조폭영화 속에서는 익숙한 풍경들이다.
이처럼 그럴듯하게 조폭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이 영화를 조폭영화로 분류하기에는 주저함이 생긴다. 분명 <스톤>에는 이 영화를 장르의 규범 안으로 이끄는 구심력 같은 힘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구심력 못지않게 강력한 힘이 자꾸만 이 영화를 장르의 틀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이 탈주의 원심력은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작동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상한 지점에서 자꾸 멈춰서거나 정지해버린다. 이 원심력을 작동시키는 장치는 바로 바둑이다.
영화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기성 우칭위엔은 바둑을 조화라 하고, 명인 도사쿠는 바둑을 도라 했다. 풍운아 겐낭인세키는 바둑에서 이치를 터득했고 이세돌은 바둑으로 경지에 올랐다. 바둑은 무엇인가?” 이어서 계단을 다급하게 뛰어오르는 남자의 모습과 바둑판에 돌을 놓는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기원의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조폭들이 들이 닥친다. 그 뒤로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들어온다. 조폭들은 기원 옆 밀실에서 도박을 하고 있던 남자 하나를 끌어 내 주먹세례를 퍼붓는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조폭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두목은 돌아갈 생각은 않고 뚫어져라 바둑판을 바라보고 있다. 부두목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두목에게 바둑 한 판 두겠느냐고 묻더니 이어서 기원에서 제일 센 상대가 나와서 두목을 상대하라고 요구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기원 한 구석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에게 쏠린다. 두목은 그 청년이 한국 기원 연구생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여섯 점을 깔고 바둑을 두기 시작한다. ‘바둑은 무엇인가’라는 조금은 생뚱맞은 질문에 대한 이질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등장한 바둑을 사랑하는 조폭 두목이라는 존재는 <스톤>이라는 영화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원을 쑥대밭으로 만든 폭력사태의 주인공이 고수(高手) 앞에서 하수(下手)로서 겸허한 태도를 취한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진행 방향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후로도 이런 낯선 상황 전개가 계속 반복된다. 다른 조직에 속한 후배 건달 하나가 남해를 찾아와 자기 부하에게 가한 보복이 너무 심했다고 항의를 하고 있다. 만약 이 영화가 조폭 영화의 규범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라면, 위계를 중시하는 건달들의 속성상 후배의 이런 행동은 선배의 즉각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응징을 부르고, 몸뿐만 아니라 자존심까지 다친 후배 건달은 복수를 계획하고, 이로 인해 끝내는 양쪽 조직원들 간의 집단 난투극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남해는 그 후배에게 갑자기 “바둑은 둘 줄 아냐?”라며 맥락을 벗어난 질문을 던진다. 사무실 바깥에서 양측 조직원들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싸움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남해의 이런 태도는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바둑을 소재로 한 동문서답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돈을 갚지 않아 끌려 온 남자에게 남해는 “바둑을 둘 줄 아느냐”고 묻는다. 두려움에 질린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해는 “바둑 두는 사람이 세상 돌아가는 걸 그렇게 몰라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나직하게 말한다. 영화 후반부에서도 그는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몰려든 상대 조직원들에게 조용히 “바둑이 남았어”라고 말하고는 다시 바둑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세래 감독은 역동적인 조직폭력배들의 세계와 정적인 바둑의 세계를 한 편의 영화 속에 공존시키려고 한다. 양립하기 힘든 두 개의 세계는 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충돌한다. 그런데 이 충돌이 묘한 소격효과를 발생시킨다. 동문서답하는 남해의 대화처럼 영화는 계속 관객의 기대와 예측을 벗어난다. 예를 들어 기원에 들이닥친 조폭들이 민수를 거칠게 끌고 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민수를 데려간 이유는 남해와 바둑을 두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두 사람이 바둑을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졌다고 느끼는 순간,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조직원들이 누군가를 끌고 들어와서는 린치를 가하기 시작한다. 조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 사이에 끼어든 바둑 이야기로 인해 상투성이 무너지는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충돌과 어긋남은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 안에서도 나타난다. 남해의 집에서 남해와 민수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살펴보자. 혼자 낚시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남해에게 민수가 다가 와 말을 건넨다.
  • 민수 : 뭐예요”
  • 남해 : 바다낚시.
  • 민수 : 낚시를 좋아하시나 봐요.
  • 남해 : 바다가 좋지.
  • 민수 : 바다가 좋아요?
  • 남해 : 어릴 적엔 바다에서 낚시 많이 했다.
  • 민수 : 왜 깡패가 됐어요?
  • 남해 : 너는 왜 바둑을 두게 됐냐?
  • 민수 : 엄마가 바둑을 두라고 해서요. 혹시 엄마가 깡패가 되라고 그랬습니까?
  • 남해 : 되라고 한 적은 없지만, 내가 누구 때리고 들어가면 잘했다고 칭찬한 적은 있었지.
  • 민수 : 그게 그거지. 엄마가 깡패가 되라고 했네요.
  • 남해 : 우리 엄마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죽었다. (TV를 보다가) 한 마리 잡았네.
이처럼 두 사람의 대화는 앞으로 이어지지 않고 계속 방향을 바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오해나 갈등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장면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스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런 식의 대화 는 마치 쇼트-리버스쇼트로 정교하게 구성된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이 고다르의 경쾌한 점프 컷을 보면서 느끼는 쾌감과도 유사한 느낌을 안겨준다. 장르와 장르사이, 장면과 장면사이, 대화와 대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런 어긋남과 미끄러짐이야말로 이 영화의 매력이다.
4. 관습적 캐릭터의 변형
갱스터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은 고독한 남성이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하층 계급에 속하며, 폭력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한다. 하지만 이들의 반사회적인 행위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갱스터 영화 속 주인공들은 최후의 순간, 씁쓸한 파멸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갱스터 영화들이 비장미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이미 파국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리 랭포드에 따르면 갱스터 영화의 주인공은 ‘활력, 생기, 결단력 같은 앨저 신화의 매력적인 특질을 공유’하지만 동시에 ‘무모함, 이기성, 가학성, 그리고 지독한 과시의 궁극적으로 자멸적인 악순환’ 같은 부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는 존재다. 흥미로운 것은 갱스터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다. 관객들은 갱스터들이 사용하는 폭력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들의 파멸을 안타까워하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이중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이 연민의 감정은 종종 이 반사회적인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강관수에 따르면 “관객들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을 자신들과 동일시시킴으로써, 현실의 좌절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이들이 법에 대해 보이는 도전을 영웅 시”하게 된다. 이처럼 관객들이 갱스터 주인공에게 일체감을 느끼는 이유는 주인공의 반사회적인 행동의 원인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톤>의 주인공 남해는 고독한 남자다. 인걸처럼 그에게 절대적으로 신뢰를 보내는 부하가 있긴 하지만,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는 위치 자체가 그를 고독하게 만든다. 또한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였던 그가 맨손으로 지금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은 그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그는 조폭 영화의 주인공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지금 다른 세계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수를 만난 후, 아니 좀더 정확히는 바둑의 세계에 빠져 든 후 다른 세계를 향한 그의 열망은 더욱 강해진다. 그래서 이따금 그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이런 그의 열망과 생각, 행동은 이후에 그가 파멸을 맞게 되는 원인이 된다.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갱스터의 존재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브라이언 드팔마의 <칼리토>의 주인공 칼리토는 출소 이후 과거를 청산하고 한적한 곳에서 중고차 판매를 하며 조용히 살아가고자 한다. 유하의 <비열한 거리>의 주인공 병두 역시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만난 첫사랑 현주와 더불어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리 랭포드는 ‘갱스터가 불행하게 되는 것은 뿌리에서 벗어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로 한 수씩 두는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승부’인 바둑에 빠져든 이후, 남해는 조폭들이 주도하는 불공정한 재개발 사업에서 발을 뺀다. 이 결정은 협력 관계에 있던 상대 조직은 물론 남해의 조직 내부로부터도 원성을 사게 된다. 조직원들이 쉽게 납득하기 힘든 결정을 내린 뒤 남해는 부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애써 자기의 진심을 이해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 누구도 그의 속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남해는 지금까지 눈앞에 닥친 일들에 대해 옳고 그름을 분간할 여유도 없이 숨 가쁘게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깊은 회의에 빠져든 것이다.
영화 중반부에서 알 수 없는 상대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한 남해는 가까스로 상대를 제압하고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일반적인 조폭영화라면 당연히 부하들이 소집되고 복수 계획이 세워졌을 것이다. 하지만이 장면 이후 남해가 드러낸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회한과 슬픔이었다. 그는 홀로 거실에 앉아 바둑판을 바라보며 담배를 핀다. 이런 그를 가리켜 인걸은 ‘철학이 있는 분’이라고 부른다. 영화 후반부에서 남해를 배신한 조직원은 “형, 같이 삽시다”라는 말로 자기의 배신을 정당화한다. 예전의 남해였다면 이 말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남해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 남해는 단순히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철학이 있는 분’이라는 인걸의 말은 빈말만은 아닌 셈이다.
단순히 과거를 청산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행위에 대해 회의하고 반성하는 남해와 같은 존재는 갱스터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칼리토나 병두의 경우, 그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의 과거를 지우는 것이었을 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과 후회를 동반하지는 않았다. 곽경택의 <친구>에서 준석이 친구인 동수를 살해한 사실을 법정에서 자백한 이유도 반성이나 참회가 아니라 거짓말을 하는 자신이 “쪽 팔려서!”였다. 참회하는 갱스터의 모습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는 코폴라의 <대부 3>일 것이다. 이 영화에는 조직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친형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던 마이클 콜레오네가 추기경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를 눈물을 쏟아내며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톤>의 주인공 남해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민수다. ‘바둑 선생’인 민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선생이 없었던” 남해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 유일한 존재다. 입단 대회를 앞두고 방황하던 민수와 술자리를 나누던 중, 남해는 “너는 입단을 못해서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고,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아서 인생 아마추어다. 그래도 넌 나이가 있으니까 꼭 프로가 되어서 살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정말 인생이 바둑이라면 첫수부터 다시 한 번 두고 싶다”고 토로 한다.
하지만 인생을 다시 살고 싶다는 남해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가 저지른 과거의 악행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남해의 말을 빌리면 지금 그는 “바둑은 다 둔 것 같은데, 끝내기가 안 되는” 상태, 다시 말해, 문제는 알지만 해답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 있다. “남해 형님한테 원한 품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는 상대방 조직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제대로 된 끝내기를 기대하기에는 그는 너무 많은 악수(惡手)를 두었던 것이다. 칼리토나 마이클콜레오네 역시 자신들의 삶이 수많은 악수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대로 된 끝내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이 도시를 떠나기만 한다면, 내게 위협이 될 존재들을 없앨 수만 있다면 한 판 역전승도 가능하리라고 가능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하지만 남해는 그런 기대를 갖지 않는다. 판을 물리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끝내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바둑에 몰두한 이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둑판에서 누구도 두 수를 동시에 둘 수 없듯이, 인생에서도 이제껏 두었던 악수들을 단숨에 수습할 수 있는 비책은 없다. 남해는 자신의 바둑이 끝내기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최후의 순간이 가까워졌을 때, 그는 민수에게 “이 바둑이 박사범하고 마지막 바둑이 될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 조직원들이 그의 사무실로 들이닥친다.
남해는 자기 예상대로 끝내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채 생을 마감한다. 프로기사들의 세계가 반집으로도 승부가 갈리는 곳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남해가 끝내기를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끝내 프로가 되지 못한 채 아마추어로 남고 말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프로가 되지 못한 그의 삶은 실패로 규정지어야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남해가 아닌 민수에게서 찾아야 한다. 영화의 에필로그는 바둑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는 민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민수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신분이다. 그는 프로가 되는 대신 아마추어 고수(高手)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장면은 남해가 남긴 질문, 즉 ‘프로가 되지 못한 삶은 실패한 삶인 가?’에 대한 답이자 감독이 프롤로그에서 던진 질문, 즉 ‘바둑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남해 자신이 이미 제시한 바 있다. “타이틀을 못 따면 프로기사 아니냐? 이세돌이만 프로기사고 박지성이만 축구선수냐? 다른 축구선수는 선수도 아냐? 다른 사람 인생은 인생도 아니냐? 바둑이 먼저냐, 사는 게 먼저냐? 그걸 알면 고수다.”
5. 캐릭터간의 관계
고독한 영웅적인 남성 주인공의 세계는 자연스럽게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계다. 코폴라의 <대부>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이 영화에서 ‘대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돈 콜레오네는 ‘패밀리’라고 불리는 마피아 조직에서 강력한 가부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돈 콜레오네의 위기는 곧 패밀리 전체의 위기와 동일시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조폭영화는 할리우드의 갱스터 영화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조성애는 한국 조폭 영화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거부나 부재,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부자관계, 과장된 형제애 혹은 형제애의 위기, 자매애의 발전, 형제들과 자매들의 대결구도, 고아의 출현”과도 같은 형태가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10] 이처럼 한국의 조폭영화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부정되거나 부재하는 이유는 조폭영화의 전성기가 IMF 시대,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가부장의 권위가 추락하던 시기였다는 사실과 연관이 깊다. 강력한 가부장을 포기한 한국영화는 대신 형제애, 즉 의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친구끼리 미안한 것 없다”는 <친구>의 대사나, 조직원들 앞에서 ‘식구’란 ‘같이 밥 먹는 입’을 가리킨다는 <비열한 거리>의 대사나, 유행어가 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던 ‘브라더’라는 <신세계>의 호칭은 모두 ‘의리’ 혹은 ‘형제애’가 한국 조폭 영화를 대표하는 가치관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부자관계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스톤>은 한국 조폭영화의 계보 속에서는 독특한 지점에 위치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평소 바둑에 관심이 많았던 남해는 우연히 기원에서 만난 민수로부터 본격적인 바둑 수업을 받게 된다. 그런데 남해가 민수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단순히 바둑 때문만은 아니었다.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채 방황하는 민수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영화가 흘러가면서 남해와 민수는 서로 닮은꼴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다. 무엇보다 둘 다 고아에 가까운 인물들이다. 남해의 어머니는 그가 중학생일 때 세상을 떠났다. 민수에게는 어머니가 있지만 그녀는 민수에게 부담만 끼치는 존재로 묘사된다. 따라서 민수 역시 심리적으로는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는 존재다. 일반적으로 갱스터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성을 약화시키는 존재로 묘사된다. 따라서 갱스터 영화에서 여성의 등장은 곧 남성주인공의 위기를 의미한다. <스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여성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단 한명 등장하는 민수의 어머니조차도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는 아들에게 도박 밑천을 얻어 가는가 하면, 도박단속을 나온 경찰이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냐’고 타박하자 “얘도 내기바둑꾼이에요”라고 고자질을 할 정도로 철이 덜 든 인물이다. 이에 반해 두 남자, 즉 남해와 민수의 관계는 긍정적인 관계로 묘사된다. 민수는 남해에게 바둑을 가르친다. 그리고 남해는 민수에게 인생을 가르친다. 이 과정을 통해 세대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른 두 사람은 일종의 의사 부자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영화 속에는 남해가 민수에 대해 마치 아버지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순간들이 묘사되어 있다. 남해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인걸이 민수를 자기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장면이 있다. 인걸은 못 받은 돈을 받으러 가는 일에 민수를 동참시킨다. 얼떨결에 주목 싸움에 휘말린 민수도 짜릿함을 느낀다. 그날 민수는 남해에게 자기도 조직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버지’ 남해는 ‘아들’ 민수를 말린다. 민수 앞에 바둑돌과 칼을 올려놓은 뒤, 남해는 “이건 돌이다. 이건 칼인데, 너 원래 돌 가지고 놀았잖아. 앞으로도 한 가지만 갖고 놀아”라고 말하며 바둑알을 민수 앞으로 내민다. 민수가 사기바둑으로 다른 조직원들에게 붙들려 감금되어 있을 때에도 남해는 그를 구출해낸다. 피범벅이 된 채로 창고에 갇혀 있던 민수를 집으로 데려온 남해는 민수에게 자기 집에 머물면서 입단 대회를 준비하라고 권한다. 민수가 집 열쇠를 받아들면서 두 사람 사이에 본격적인 의사 부자 관계가 시작된다.
박원상은 이 영화를 가리켜 “인생을 첫 수부터 다시 두고 싶어 하는 한 남자와 인생의 첫 수를 두기 너무 힘겨워하는 또 다른 한 남자의 이야기” [11] 라고 말한다. 인생을 다시 살고 싶었던 남해에게나 인생을 이제 막 시작해야 할 민수에게나 상대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건달로 살면서 평생 남에게 몹쓸 짓만 하고 살아왔던 남해는 민수와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기 시작한다. 삶의 목표를 상실한 채 방황하던 민수 역시 남해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껍질을 깨기 시작한다. <스톤> 외에도 많은 갱스터 영화들 속에서 의사 부자관계나 의사 형제 관계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시리즈에서 대부는 ‘패밀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진짜 가족을 살해한다. <친구>에서는 조직을 위해 가장 친했던 친구를 해치는 조폭이 등장한다. <비열한 거리>에서는 함께 밥 먹는 우리들이야말로 진짜 ‘식구’라고 말하던 병두가 그 식구들로부터 배신당하며, <신세계>에서는 ‘브라더’들 끼리 서로를 속고 속이는 암투를 벌인다. 이에 반해 <스톤>의 가족 관계는 배신당하지 않는다. 비록 남해의 죽음으로 파국을 맡긴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해와 민수는 서로를 신뢰한다. 그런 점에서 <스톤>은 갱스터 영화라기보다는 오래된 서부영화를 닮았다. 토머스 샤츠는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이 서부를 잃어 버리고, 도시의 콘크리트 정글 속에 갇히게 될 때, 이들은 고독한 갱스터가 된다”고 말한바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와중에도 자신이 보호해야 할 세상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았던 남해라는 인물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표현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민수 역을 맡은 배우 조동인이 조세래 감독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조동인이 캐스팅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감독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바둑실력 때문이었다. 영화의 전개상 천재 아마추어 바둑기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실력자가 필요했고, 9살 때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바둑을 배운 조동인은 이 영화에 딱 맞는 적임자였다. [12] 따라서 이 영화에서 남해가 민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세래 감독이 아들이자 배우인 조동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영화 속 남해와 민수의 관계에 대해 조동인은 “민수라는 역할은 저보다 감독님의 어린 시절을, 남해는 감독님의 지금이나 그 이후의 시절을 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3] 그의 말대로라면 이 영화는 나이 든 조세래가 젊은 시절의 조세래에게 전하는 이야기, 더 나아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6. 결 론
본 논문은 혼종 장르인 <스톤>이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장르영화의 재도약은 장르적 관습을 깨뜨리는 작품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나 코폴라의 <대부>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영화계에서도 조폭영화와 코미디영화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접목시킨 <넘버 3>의 등장은 2000년대 초반 조폭코미디의 전성기를 불러왔다. 하지만 이후 한국의 조폭영화는 무차별적인 자기복제로 인해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장르적 규범을 깨뜨림으로써 쾌감을 선사했던 조폭코미디가 또 하나의 식상한 규범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스톤>은 정적인 바둑의 세계와 역동적인 조폭들의 세계를 하나로 엮는 영화라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이 영화와 장르는 다르지만 바둑이야기와 사회드라마를 접목시킨 TV드라마 <미생>이 최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서도 혼종 장르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질적인 두 세계의 조합은 새로운 인물, 새로운 리듬을 창조한다. 사색적이며 회의적인 조폭 두목 남해는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다. 또한 정적인가 하면 격렬한 액션이 등장하고, 긴장이 고조되는가 싶으면 다시 고요한 정적이 찾아오는 영화의 리듬 또한 조폭영화는 물론 액션영화 전체에서도 유사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리듬이다. 더 나아가이 영화는 바둑을 소재로만 활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영화의 핵심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함으로써 조폭영화의 한계로 지적되었던 빈약한 주제의식의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최근 한국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소재의 빈곤, 주제의식의 상실, 스펙터클에 대한 강박으로 인한 제작비 상승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몇 년간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작품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한국영화가 질적 저하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소재의 참신함, 깊이 있는 주제의식, 절제된 스타일 등을 갖춘 <스톤>은 제작자나 창작자 입장에서 그 가치를 재평가해볼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BIO
김 이 석
연세대학교 문학사
연세대학교 문학석사
파리 8대학 영화학박사
현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관심분야 : 영화, 영상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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