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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ancement in Techne and strategy of image for Mimesis
Advancement in Techne and strategy of image for Mimesis
Journal of Korea Multimedia Society. 2014. Mar, 17(3): 373-384
Copyright © 2014, Korea Multimedia Society
  • Received : November 05, 2013
  • Accepted : January 06, 2014
  • Published : March 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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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 최
동서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부
왕주 이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치용 김
동의대학교 영상정보공학과

Abstract
인간의 시각경험과 그 재현의 열망은 문명사의 시원에서 그 흔적을 남겨왔다. 당연히 이미지의 역사는 그러한 시간의 깊이에로 소급해야 한다. 그 기원에서 드러나는 이미지의 존재론적 위치는 시각경험의 리얼리티를 핍진적으로 재현하는 데 있었다. 이 열망이 결국 원본과 복제의 차이를 좁히려는 다양한 시도들로 장르화되었다. 핵심은 복제 즉 미메시스의 존재 자격을 원본성에로까지 고양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눈에 의한 시각경험의 산물인 인상에 어떤 방식으로 리얼리티를 부여하는가라는 기술적 과제로 남겨진다. 고대 그리스에서 테크네에 대한 성찰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겹쳐진다. 본 연구가 플라톤의 원본 이데아와 그 복제 미메시스에 대한 논의를 출발의 단초로 삼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플라톤이 분류한 ‘미메시스’가 원본 이데아로부터의 원근에 의해 여러 층위가 나눠지듯이 미메시스를 구현하는 테크네 또한 다양한 위상을 갖춘다는 것이다. 결국 이미지, 혹은 미메시스의 역사는 플라톤 패러다임의 맥락에서 볼 때, ‘사상(似像)’과 ‘환상’을 향한 진보의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후대에 구현된 기술적 재현의 다양한 메커니즘은 이러한 성찰을 토대로 하여 이뤄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Keywords
1. 서 론
주체는 대상을 인지하기 위한 근거로서 스스로의 감각을 활용한다. 이 가운데 시각은 거리의 원근, 접촉의 유무 등과 무관하게 대상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주체가 대상을 인식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특히 시각은 움직이는 이미지의 연속을 통해 대상의 크기, 형태, 질감, 운동감 등 양질의 정보를 생산하면서 시각에 대한 주체의 의존도를 높였다.
때문에 인류는 명멸하는 시각을 향해 천착했고, 자연스럽게 기록과 재현의 필요성이 환기되었다. 태초의 인류에게 시각적 대상의 재현을 위한 축적된 방법은 없었지만, 이미지를 향한 염원과 의지의 지속되었다. 시각적 대상의 구현을 위한 기술이 축적되어 재현된 이미지로서의 목적이 달성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이때의 지향점은 시각에 의해 경험된 대상들의 인상(印象)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이미지는 사실적 재현만을 지향하지 않았다. 추상적인 이미지, 비사실적인 이미지도 이미지의 역사와 함께 시도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의 이미지, 추상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축적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대상의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선, 입체적 양감을 평면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형태, 빛의 움직임에 의한 명암 등은 반복된 훈련에 근거한 기술의 축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눈이 생산하는 이미지를 다른 매개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공에 의한 기술이건, 기계에 의한 기술이건 반드시 방법론의 축적 즉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의 생산과 기술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이상을 전재로 본 연구에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전개된 이미지의 재현과 기술의 진보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플라톤(Plato)이 이루어놓은 학문적 기반을 토대로 이미지를 위한 테크네(Techne)의 진보 과정과 지향점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2. 미메시스와 테크네
플라톤은 ‘대상의 근원으로서의 이데아(Idea)’ 1) , ‘이미지 생산’, ‘생산을 위한 기술로서의 테크네’에 대해 철학적 성과를 이루었고, 현재의 이미지와 기술에 대한 논의도 플라톤의 학문에서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시각에 크게 의존하여 이미지의 재현을 염원하는 등 이미지에 이끌리는 것과는 달리, 플라톤은 이미지의 재현을 이상적인 국가에서 몰아내야할 부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플라톤은 존재, 형상, 이미지의 가치를 침대의 예를 통해 “하나는 신이 만든 자연에 있는 것, 또 하나는 목수가 만든 것, 나머지는 화가가 만든 것” 2) 으로 구분하면서 목수와 화가의 결과물을 각각 다른 층위에 두었다. 즉 목수가 신이 창조한 ‘이데아’에 주목하면서 대상을 ‘미메시스(Mimesis)’ 3) 한다면, 화가는 다시 목수가 만든 결과물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플라톤의 ‘삼단모방설’이다. 여기에서 “목수가 침대의 ‘제작자’라면, 화가는 ‘모방하는 자’이다. 화가의 모방은 ‘참다운 것의 모방’이 아니라 나타나 보이는 것을 목표로 허깨비에만 닿는다. 모방하는 자는 그것에 관해서는 말할 만한 지식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모방이란 일종의 놀이에 지나지 않고 심각한 것은 아니다.” 4) 고 하였다. 즉 화가는 궁극적 대상인 ‘이데아’를 향해 ‘미메시스’하지 않고, 제작자가 만든 제작물을 다시 모방함으로써 진정한 ‘이데아’를 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플라톤은 ‘삼단 모방’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측면을 고발했다. “그림과 모방의 기술은 우리 안에 있는 사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부분과 사귀는 것이고, 조금도 건전치도 진실 되지도 않은 목적을 위해서 사귀는 한패이다. 모방을 일삼는 작가는 명성을 얻고자 영혼의 훌륭한 부분으로 향하지 않고, 진리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림자 그림 같은 허깨비를 만들어 낸다.” 5) 고 하였다.
플라톤의 이론에서와 같이 작가가 대중의 환심을 얻기 위해 불온한 상념들만을 쫒고, 진실로부터 떨어져 의미 없는 대상들을 모방한다면 실제 ‘모방하는 자’들은 이상적인 국가에서 추방당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미메시스에 대한 연구자들의 논의는 “첫째, 예술의 본질을 모방이라는 소박한 사실주의로 보는 편협한 견해이다. 플라톤 시대에 부재했던 체계적인 예술에 대한 관념으로 인한 부당한 인식론적 견지라는 비판적 입장이다. 둘째로는 모방이 소박한 사실주의에만 적용할 수 있는 편협한 견해이기 때문에 이류, 삼류의 예술가들에게 해당한다는 것이다. 반면 단순히 감각적 실재를 모방하는 ‘나쁜 모방’과 이상적 존재인 이데아를 모방하는 ‘좋은 모방’으로 구별한 후, 직접 이데아를 모방하는 예술가야 말로 이상국가에서 요청하는 참된 예술가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참된 예술가는 이데아를 보고 그것을 모방하기 때문에 그 작품은 이데아로부터 ‘세 번째의 것’이 아니라, ‘두 번째의 것’이라고 하였다. 셋째, ‘예술이 이데아의 간접적인 반영’이라는 입장이다. 이상주의와 대를 잇는 사실주의적 해석과 ‘좋은 모방’으로서의 이상적 해석의 통합 속에서의 예술론으로서 ‘시인 영감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6) 즉 미메시스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단순한 사실성의 모방만이 아니라 이데아의 연장선 속에서 실현될 때, 시인과 화가는 ‘모방하는 자’가 아닌 ‘제작자’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으며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르데니우스(W. J. Verdenius)는 플라톤의 삼단모방설에 대해 “플라톤의 예술이론에 대한 현대의 반론들은 모두 플라톤이 이성주의 때문에 예술창작의 특수한 성격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예술은 현존하는 실재를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생기는 새로운 실재를 창작하는 것이며, 이 표현의 자발적인 성격이야말로 순수하게 미학적인 성질들의 자립적인 가치를 보증하는 것이다.” 7) 고 하였다.
실제 이미지 재현의 역사 속에서는 ‘현존하는 실재의 모사’가 이미지를 향해 출발점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시각이 생산하는 끊임없는 이미지의 연속 속에서 한 장면만을 선택한다는 것은 개인적 감정과 환상이 개입하는 창조적 작업의 과정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원시동굴의 인류이건, 사실적 인상을 향한 화가이건, 카메라로 촬영하는 촬영자이건 이미지를 향한 의지 속에는 주관적 개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재현을 위한 시도와 관련하여 플라톤의 철학 속에서 살펴보아야할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미메시스를 위한 방법이다. 즉, 이데아를 향한 모방이 ‘이데아’로부터 어떤 거리에 위치하든 여기에는 반드시 기술적 방법론이 필요로 한다. 이른바 테크테이다.
테크네의 분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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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네의 분류8)
플라톤은 테크네를『소피스트(Sophistes)』에서 “모든 기술은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존재하도록 야기하는 ‘만드는 기술’, 어떤 것도 무엇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배움과 앎을 얻는 ‘획득기술’로 분류했다. 나아가 ‘획득술’에서는 ‘사냥기술’과 ‘교환기술’로 나누었고, 제작술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으로 분류하였다. 다시 ‘제작술’을 각각 ‘사물자체를 제작하는 것’과 ‘모상을 제작하는 것’으로 체계화한 후, 모상(模像)제작술은 ‘닮은꼴 제작술’과 ‘유사닮음 제작술’로 분류하였다." 9)
모상제작의 분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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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상제작의 분류10)
플라톤은 테크네를 획득술과 제작술로 구분한 후, 제작술을 횡과 종으로 나누어 세부적으로 분류하였는데, 이때 ‘인간적인 것・모상의 제작’에서 제작의 방법에 따라 “‘도구를 통한 제작’과 ‘유사 닮음을 제작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을 도구로 이용하는 제작(模寫術)’으로 나누었고, 다시 모상의 제작을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참된 다른 것 : 실재성 혹은 존재에 있어서 원본과 같은 그러나 원본 자체는 아닌 것’과 ‘그와 다른 것 - 있지 않은 것이 어떤 점에서 있다는 것’으로 분류하였다.” 11)
테크네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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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네의 분류
모상의 제작과 관련하여 강손근은 ‘인간적인 것’을 중심으로 “기술은 획득술과 제작술로 구분된다. 제작술은 세분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실용물의 제작과 영상의 제작으로 구분되고, 후자는 다시금 사상(似像)의 제작과 환상의 제작으로 나누어진다.” 12) 고 하였다. 플라톤의 분류에 따르면 인상에 의한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한 인류의 목표는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 즉 ‘사상(似像)의 제작’이다. 물론 이때의 근거는 주체의 시각이었지만, 태초의 인류에게 시각의 상(像)을 미메시스하기 위한 테크네는 부재했었다.
플라톤은 자연과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이데아의 사본이라고 보았다. 수많은 나무의 종류를 나무라고 부르고, 수많은 책의 종류를 뭉뚱그려 책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데아라고 여겼다. 여기에서 이데아의 세계만이 참된 실재, 진리의 세계이고,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남경태, 『개념어사전』, 조우현 역, 들녁, 2007, pp. 149-150에서 재편집.
플라톤, 『국가』, 조우현 역, 사단법인 올재, 2013, p. 463.
일반적으로 ‘모방을 통한 예술창작의 과정’을 의미하나, 플라톤은 ‘모방을 통한 제작의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하였다.
위의 책, pp. 463-473.
위의 책, pp. 475-479.
강손근,『플라톤 미학에 있어서 ‘미메시스’에 관한 연구』, 동아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pp. 7-8에서 재편집.
W. J. Verdenius, Mimesis : Plato's doctrine of artistic imitation and its meaning to us, Philosophia Antiqua Ⅲ, Brill Archive, 1949, pp. 1-2. 강손근, 위의 논문에서 재편집, p. 10.
위의 책, pp. 33-155를 표로 정리.
플라톤,『소피스트』, 이창우 역, 이제이북스, 2012, pp. 33-43, pp. 71-72, pp. 152-155.
위의 책, pp. 81-83을 표로 정리.
위의 책, p. 157, pp. 81-83.
강손근, 앞의 책, p .13.
3. 테크네의 축적
원시 인류에 축적된 테크네는 없었지만, 바라본 대상의 움직임 자체에 대한 염원은 척박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오직 선과 색채의 조합을 통해 활동의 핍진성에 다가서려는 간절한 열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그림 1 (a)의 선들에서 달리는 말들의 역동성이 엿보인다. 이미지의 선들이 닫혀 재현되지 않고 여러 선들로 중첩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작가의 관심사가 더 이상 대상물의 지정(指定)적 재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의도는 그림 1 (b)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미지들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의도가 지금의 시각장(視覺場) 중앙에 비교적 선명하게 그려진 동물 한 마리의 재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두 개의 뒷다리와 꼬리가 다른 동물들의 윤곽선에 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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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동굴벽화
플라톤의 모방에 대한 분류로 따르자면 원시벽화는 직관적 사실주의를 향한 ‘나쁜 모방’이다. 하지만 사실적 이미지를 향한 염원은 인류가 떨칠 수 없었던 매력의 대상이다. 때문에 인류는 오랜 시간동안 시각적 이미지의 기록을 수공에 의존하면서 다채로운 재현의 문명사를 진화시켜나갔다. 그리고 이미지를 향한 극점에서 문자가 탄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출발은 당연히 상형문자이다. 상형문자에서 표의문자로 진화하면서 재현의 역사에 커다란 변혁, 즉 기호학적 전환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문자의 탄생이 결코 재현의 열망을 종식시킬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미지의 생산을 다른 방식으로 더 강화시켜나갔다.
그림 2 에서 보듯이 문자의 기록과 병존하는 다양한 형상들의 회화적 재현은 이러한 문명사의 전개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집트 시대의 미술가들은 그들만의 이미지 재현의 방법을 완성시켰다. 그들은 화면속에서 중요한 인물을 가장 크게 묘사하였고, 비중이 낮은 인물들은 작게 표현했다. 그리고 인물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얼굴은 옆모습을 그렸고, 상반신은 정면, 하체는 움직임의 표현을 위해 옆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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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눔호텝 묘실의 벽면, 기원전 1900년경
그리고 이미지의 상하 배치에 따라 대상의 원근을 표현함으로써 대상의 완전한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조합하고자 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이는 매우 낯설고, 어색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집트인들의 독특한 이미지 재현의 방식이 담겨 있으며 이미지와 함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그들만의 합리성이 잠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여기에는 이집트인들의 이성과 문명이 진일보함에 따라 등장했던 나름의 진화된 시각적 방법론이 함의된 것이다. 현대의 원근법적 재현과는 매우 다르지만 이때에도 이집트인들은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으로서의 이미지 묘사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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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미술
이후의 그리스 미술에서는 ‘모상’의 사실성을 높이면서 아름다움과 균형의 미를 추구하게 된다. 때문에 그리스 미술에서는 ‘사상(似像)’만이 아닌 작가의 감정이 세련되게 반영되어 있다. 섬세한 근육과 움직임의 포착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고,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이미지는 시각에 대한 재현과 함께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고 있다.
이때 그리스인들의 기저에는 외향적 동일성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심화된 테크네가 축적되어 있다. 때문에 ‘신적인 것’ 즉, 이데아를 향한 아름다움과 감정의 드러냄이 시도될 수 있었다. ‘이데아를 향한 의지’는 테크네의 수련과 축적이 담보되어야 했기에, 예술적 내면을 표출하고자 하는 인류와 문명의 노력은 테크네를 점층적으로 진보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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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 그리스도를 애도함, 1305년경
그리스 시대 이후에는 이미지에 잠재된 가치가 부각되면서 종교에서도 이미지의 재현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종교적 지도자들은 이미지가 문맹자에게 교리를 쉽게 전달하고 뇌리에 각인시킬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미지의 재현은 종교를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매체였다.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는 “평평한 평면에서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을 재발견하였고, 〈그리스도를 애도함〉에서 성경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는 것과 같은 환영을 창조 해낼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회화는 기록된 문자의 대용품 이상의 것이었다. 우리는 마치 무대 위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제 사건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13)
이제 인류는 ‘사상(似像)’을 초과하여 점차적으로 '참된 것이 아닌 것 : 존재하지 않으면서 닮은 것'에 대한 시각적 재현을 시도한다. 즉 환상을 향한 이미지의 구현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적 재현을 위한 테크네의 한계는 환상의 이미지를 회화적 수준의 재현으로 한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당시 테크네의 수준은 ‘눈’이 생산하는 이미지와 같은 사실적 모상을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했다. 때문에 인류는 시각의 확장으로서의 ‘사상(似像)’과 함께 ‘거짓’으로서의 창조적 이미지의 시각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게 된다. 환상의 창조를 시도하는 것이다.
시각의 재현을 향한 시도의 축적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획기적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인류는 탄생이후, 시각을 통해 바라 본 대상을 보다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했던 내재적 욕망이 인본주의를 토대로 한 이성과 자아의 재확립에 따라 테크네를 진보를 가져온 것이다. 르네상스에 의한 인간중심의 사고는 이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과학적 테크네가 성숙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전의 이미지 역사에서 재현의 주체는 신이었다. 그러나 인본주의는 인간에게 주체성을 부여하고, 원근법이라는 방법론을 부활시키게 된다. 테크네의 진보가 가능하게 된 계기이다. 테크네의 발전과 함께 예술가는 비로소 스스로의 자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예술적 창조자로서 등장하게 된다. 우리가 너무도 친숙하게 알고 있는 르네상스의 천재 예술가들, 가령 레오나르도(Leonardo Da Vinci),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등이 바로 전형적인 그런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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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옵스큐라 도해, 1544년
나아가 사실성에 대한 의지는 기계에 대한 거부감을 불식시키면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주목받게 했다. 화가들은 밑그림을 위해, 즉 사상(似像)의 실현을 위해 카메라 옵스큐라를 대중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때 주목할 부분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가 BC4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 그 원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인류에게 카메라 옵스큐라의 테크네는 실제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테크네는 발견된 후, 약 2,000년의 시간이 지난 르네상스 시대에 재등장하였고, 다시 500여년이 지난 후에 사진이라는 테크네로 완성을 이루게 된다. 여기에서 테크네의 가능성과 실천적 사용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연구자는 테크네가 점진적 진보에 따라 선형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합의된 요구에 따라 불연속적으로 등장함을 주장한다. 인류의 집단적 자의식의 축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결국 재현의 테크네는 과학사가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어휘로 하자면 혁명 패러다임의 대체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당연히 인류문명의 성숙에 따른 이성적 자아와 합리적 방법론의 수용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를테면 동굴 뼈를 활용한 사냥, 불의 등장, 투시법의 적용, 인본주의 등이다.
마치 시각과 같은 대상의 재현은 태초부터의 염원이었지만,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으로의 실현은 테크네의 축적이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했었다. 미세하지만 테크네는 지속적으로 누적되었고, 회화적 재현에서의 사실성은 점차 진보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참된 것이 아닌 것’ 즉, ‘환상’의 시도까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회화적 수준의 환상은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
테크네가 인류의 요구에 의해 진보를 거듭하기는 했으나, 반드시 선형적으로 등장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즉 원근법, 카메라 옵스큐라의 수용에 대한 사례에서와 같이 테크네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요구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비록 이성과 합리성의 성숙에 따라 테크네가 축적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여기에는 시각에 기반을 둔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과 함께 ‘참된 것이 아닌 것’을 향한 인류의 욕망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참된 것이 아닌 것’의 시각화는 테크네의 한계로 인해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을 향해 전개되었다.
E. H. 곰브리치,『서양미술사』, 백승길, 이종숭 역. 예경, 2005. pp. 201-202.
4. 기계복제와 이미지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혁신된 기술을 토대로 공업화와 대량생산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등장한다. 산업혁명의 테크놀로지 14) 는 노동력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증대시키면서 산업의 전 분야로 파급효과를 끼치게 된다. 시각 이미지의 재현의 분야에서도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인식의 전환은 새로운 방법에 의한 시각매체의 탄생을 추동하기에 이른다. 과학적 단계에 따른 명징적 이미지에 대한 잠재적 요구가 팽배해진 것이다. 실제로 인류는 눈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상응하는 재현을 누적된 역사 속에서 염원해왔고, 이성적 합리성이 성숙되면서 테크놀로지 예술의 탄생은 예견되었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카메라 옵스큐라는 등장했고, 1839년 비로소 그것의 이미지를 정착시키고자 했던 시대적 요구는 사진술이라는 상징적 테크놀로지로 응답한다. 사실적 대상의 재현을 위해 진화해어 온 이미지 생산의 역사에서 사진술은 획기적 전환점을 가져온다. 비로소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의 현실적 재현을 실현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상(似像)’은 반복을 통한 수공의 훈련이 담보된 소수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들은 재현기술의 축적을 통해 대상의 사실적 묘사를 추구하였고, 나아가 개성과 주관성을 반영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화가에 의한 이미지의 재현은 개인적 기술의 연마와 개별적 취향에 따라 편차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상(似像)’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개인성이 반영될 여지가 컸기 때문이다. 화가는 재현의 대상을 선정한 후, 당시의 인상을 토대로 이미지를 재현하기 때문에 완벽한 주관성의 배제란 가능할 수 없었다. 완벽한 대상의 재현이 불가능한 목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 6 은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Elisabeth-Louise Vigee-Le Brun)이 그린 프랑스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의 초상화이다. 동일한 인물을 그렸지만 피사체를 바라보는 화가의 관점과 인상은 동일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바로 동일한 ‘형상’에서 상이한 ‘이미지’가 구현된 것이다. 물론 예술은 작가의 주관적 인상을 토대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하지만 수공에 의한 방법론은 시각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재현하고자 했던 인류 염원을 객관적 차원에서 만족시킬 수 없는 한계를 내재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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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 Marie Antoinette
그러나 렌즈, 셔터스피드, 감광체를 통해 과학적 방법으로 이미지를 생산하는 사진술은 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비로소 ‘눈’이 만들어내는 시각과 일대일로 오차 없이 대응하는 이미지의 재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사진술은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을 넘어 그야말로 생생한 현실의 재현을 취하였다.
초기 사진술의 사용자 중에는 화가가 다수 있었고, 오랜 회화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사진술이 회화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또한 초창기의 사진가들도 회화적 이미지의 구현에 몰두하기도 했다. 비록 사진의 회화주의적 시도가 사진술이 예술적 테크놀로지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사물과 핍진하게 대응하는 사진의 가치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림 7 (a)는 이미지를 합성한 사진으로서 사진만의 고유한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회화적 구도와 분위기를 묘사하고자 했고, 그림 7 (b)에서도 회화적 이미지 재현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진의 핍진성에서 비롯되는 현실의 찰라적 재현에서 드러나는 탁월성이 인식되기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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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적 관습의 사진
그러나 사진술에 잠재되어 있던 획기적 가치는 오래지않아 부각되면서 사진은 사실주의로 향하게 된다. 사진가들은 회화적 이미지를 쫓기보다는 현실에서 마주쳤던 이미지를 순간으로 잘라내면서 사진만의 탁월한 재현기법을 점차적으로 극대화해나간다.
그림 8 (a)은 사진의 회화주의적 경향에 반대하여 스트레이트 포토 15) 를 주장하며 ‘사진분리파’ 16) 를 전개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사진으로서, 그의 사진에서 사회의 구조와 빈부의 격차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 사진에서만 가능한 현실의 단면을 포착하여 회화적 방법론에서는 불가능한 영역을 사진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림 8 (b)에서도 벽돌의 사실성이 부여하는 삶에 대한 상징적 무게와 의미 심장한 벽돌공의 표정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만일 두 작품이 회화로 시도되었다면 플라톤의 ‘삼단 모방설’에서와 같이 ‘모방’의 방법론에 의해 근원성이 상쇄되었을 것이다. 회화적 표현기법이 사실성을 절실히 표현하기에는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회화가 작가적 테크네와 순간의 기억을 상상하여 재현한다면, 사진은 실존하는 대상을 현실의 찰라 속에서 완벽히 복제하기 때문에 그 진실적 가치는 상이하다. “바르트에 의하면 사진은 ‘문자 그대로 지시대상이 방사되는 것이다.’ 언어가 본질적으로 허구인 반면 사진은 확실하고 진정한 느낌을 지닌다. 사진은 지시대상을 그 자체에 담고 있는데, 달리 표현하자면 지시대상이 사진에 점착된 듯 보인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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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포토
플라톤의 분류체계에 따라 보자면 사진은 비로소 ‘인간적인 것・모상의 제작’ 가운데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에 해당된다. 그러나 주관적 수공에 의한 회화와는 달리 사진은 대상을 객관적 방법론으로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비록 회화와 사진이 플라톤의 분류 속에서 나누어져 있지 않지만, 동일한 단계라고는 할 수 없다. 만일 플라톤이 사진술은 예견했더라면 그는 ‘제작술’을 더욱 세분해서 분류했을 것이다.
플라톤이 회화를 이상적 국가에서 몰아내어야할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회화가 ‘진리로부터 떨어져 허깨비의 외형’만을 재현하기 때문이었다. 플라톤의 주장에 의하면 사진도 ‘이데아’의 복제인 사물을 미메시스할 따름이지만, 사진은 주관적 왜곡을 거부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접근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았다.
재현을 향한 외적인 차별성과 함께 사진은 내적인 측면에서도 ‘이데아’, ‘진리’, ‘예술’에 대한 논란을 실제로 불러일으켰다. 사진술의 등장과 확산은 전통 예술의 존재와 방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를 유도했고,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재정립을 요구했다. 실제로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의식에 기대어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 18) 그러나 기계에 의한 복제는 복제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진술을 향한 이와 같은 논쟁에서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은 “기계적 작동에 의한 존재의 형이상학적 ‘생성(gēnese)’을 ‘자동생성’이라는 사진적 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즉 바쟁은 사진이 인간의 부재에 의해 드러나지만, 사진의 생성 과정에 따라 작동자의 의도가 철저히 배제된 실증적 자료로서의 ‘인식론적 관점’과 형이상학적 존재의 가치를 빛의 자국으로 드러내는 ‘존재론적 관점’이 있음을 지적하였고, ‘존재론적 관점’에서 생성된 사진이야말로 사진의 기술적 특성을 통한 인간의 창조적인 행위라고 하였다.” 19) 이는 테크놀로지에 의한 예술이 예술적 가치를 내포하기 위한 핵심적 가치판단의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서 인류의 예술사에 지속적으로 등장할 테크놀로지 예술에 대한 예술적 기준을 제안하고 있다. 여기에서 ‘존재론적 관점’이란 ‘이데아’, ‘진리’의 연장선상에서 예술을 표현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또한 태곳적 원시인류부터 테크놀로지에 의한 예술이 실현되기까지 지속적으로 성숙해온 성숙한 사고와 창조적 의식의 반영이며, 내적인 의미의 생성이라 할 수 있다.
바쟁의 이론에서와 같이 비록 사진이 인간의 부재 상태에서 생성되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프레임을 선정하고, 초점과 노출을 선택하는 등의 이성적 자아에 의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존재론적 관점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이미지 속에 부여하기 위해 주제와 소재를 선정하고 프레이밍을 통해 셔터를 누른 후, 의도에 따라 이미지를 인화하여 전시하기까지, 각 단계를 통해 의미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비록 의지적 자아의 반영에 대한 심도는 상이하지만 실증적 자료로서의 활용되는 인식론적 관점에서의 사진이미지에서 조차도 대상을 선정하고 목적에 부합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각각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일반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손쉽게 누른 셔터에 의한 이미지도 대상의 선택과 프레이밍에 따른 목적성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즉 어린아이에서부터 전문가까지, 기념사진에서 작품사진까지 다양한 층위의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으나 여기에는 촬영자의 기본적 의도가 내재되어 있고 촬영의도에 따라 결과물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때 의도에는 의식적 자아의 이성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를 위해 대상을 선정, 촬영, 생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에서 진일보하여 존 버거(John Berger)는 이미지의 재생산을 통해 “복제시대에 있어서 작품이 지닌 의미는 더 이상 작품 자체에 있지 않고, 이동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작품의 복제로 해서 작품의 이미지는 매우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또 복제된 이미지는(원작품과는 달리) 그것(다양한 목적의 사용)을 가능하게 혹은 그러한 사용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20) 고 하였다.
기계복제에 의한 이미지는 그것이 생성될 시점에 창작자의 의도와 의미가 이미지 속에 내포되지만, 기계복제에 의해 재생산되거나 복제될 때 제2의 의미가 부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촬영단계가 아닌 2차적인 과정, 재생산과 재해석에 따른 생성의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촬영 순간의 의도와 감정은 재의미화의 과정 속에서 재편집되고 재의미화되면서 새로운 존재론적 관점의 이미지로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 관점의 변화, 감정의 재이입에 따라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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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 2008 Memory, 1992~1995
실제로 〈2008 Memory〉(연구자의 사진전)에서 전시된 사진 이미지들은 1992년부터 1995년에 걸쳐 ‘도시의 풍경’을 소재로 촬영되었다. 이후 이미지들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후 청년의 기억, 과거, 그리움 등에 대한 이미지로 재의미화되면서 ‘기억과의 조우’라는 주제로 재탄생하게 된다. ‘도시의 인상’이 ‘기억’으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각각의 이미지들은 시간을 뛰어넘으며 당시의 장면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만, 재생산된 시점에서의 가치부여에 따라 재탄생된다. 이는 최초의 이미지가 기계예술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제약 없이 언제든지 재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테크네가 수공에 의한 반복적 수련을 통해 가능한 영역이라면, 테크놀로지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 실현된 기술의 영역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
‘예술로서의 사진(Photography as Art)’이 아니라, ‘사진으로서의 예술(Art as Photography)’을 지향한 사실주의 사진운동으로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 의해 전개되었다.
‘스트레이트 포토’에 동참하는 일련의 사진가 단체. 그러나 ‘사진분리파’의 활동에서도 회화주의적 경향이 지속되자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탁월성을 인식하고 있는 작가를 발굴하는 등 지속적으로 ‘스트레이트 포토’를 전개해나갔다.
숀 호머,『라캉 읽기』, 김서영 역, 은행나무, 2009, p. 173.
발터 벤야민,『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최성만 역, 도서출판 길, 2009, p. 52.
이경률, 『철학, 예술을 읽다』, 동녘, 2007, pp. 322-325.
존 버거,『영상커뮤니케이션과 사회』, 강병구 역, 1995, pp. 55-56.
5. 영상의 실현과 환상의 시도
사진술의 발명에 따라 인류의 염원이었던 사실적 이미지의 구현은 비로소 성취되었다. 무엇보다도 전문가적 수준에서만 구현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대중적 차원에서 ‘사상(似像)’이 실현된 것이다. 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이 설립한 코닥은 100장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제작, 판매하면서 “셔터만 누르십시오, 그 나머지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21) 라는 슬로건으로 이미지에 대한 인류의 누적된 요구에 응답하였다. 이미지의 개인적 생산과 소유가 대중적으로 가능해지면서 누구나 카메라로 인물을 촬영하고 낯선 곳의 풍경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회화처럼 이미지가 특권층의 소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대중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진의 잠재적 가치는 주목받게 되었다. 사진의 증거력은 뉴스와 보도에서 포토저너리즘을 탄생시켰고, 잡지, 광고 등의 매체에서 광고사진분야를 형성해나갔다. 또한 예술로서의 사진도 사진술만의 탁월함을 토대로 영역을 확장해나간다.
그러나 인류의 진정한 요구는 순간의 찰나적 재현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생생한 영상의 기록이었다. 움직임의 재현을 향한 흔적이 알타미라의 동굴벽화에 남아 있듯이 이미지를 향한 궁극적 지향점은 영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때의 근거도 당연히 ‘눈’이다. 주체가 바라보는 시각과 같은 이미지의 연속, 즉 영상은 정지된 이미지에 앞서는 인류의 요구로서 언제나 내재되어 있었다.
사진술이 인류사에 반드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때, 영화는 더욱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주체적 이성이 담보되기까지 오랜 시간의 성숙기간을 필요로 했지만, 영화는 사진술의 공표 후 빠르게 등장했다. 태초부터 내재되었던 영상에 대한 요구가 주체성의 확보, 영상에 대한 팽배한 열망, 잔상효과의 시도 등을 누적하면서 영화의 토대를 형성한 것이다.
영화의 등장은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관객은 움직임에 몰입되어 카메라와 렌즈가 생산하는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미지를 향한 미메시스의 역사에서 사진술이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을 실현하였다면 영화는 찰나적 ‘사상(似像)’을 넘어 눈이 생산하는 시각에 비견할만한 영상의 실현을 성취하였다. 사실적 이미지의 완벽함과 움직임의 결합은 영상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면서 다른 시각 매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을 형성했다.
무엇보다도 영화는 영화적 장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고, 내러티브는 영화적 공간을 완성하면서 관객을 매료시켰다. 사진이 소재와 주제의 선택, 프레이밍과 노출 등 주체적 선택의 연속선상에서 작품을 찰나적으로 완성했다면, 영화는 사진의 그것을 능가하는 과정을 거치며 의미화를 완성시켜 나갔다. 영화는 하나의 장면이 아닌 여러 종류의 컷들을 조합하여 완성하기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이미지를 생산하고 창조적 편집의 과정을 거쳐 보다 심화된 의미를 창조했던 것이다. 또한 영화는 다양한 카메라의 관점과 함께 내러티브의 구성을 전개하면서 관객을 영화에 편승시켰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감독과 많은 스텝들은 제작의도를 위한 수많은 선택의 반복을 거치면서 창조적 작업을 완성해나가게 된다.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이 성취되면서 미메시스의 지향점은 궁극적 목표점을 향한 재도약을 시도한다. 바로 ‘참된 것이 아닌 것 : 존재하지 않으면서 닮은 것’을 향한 미메시스이다. 이른바 ‘환상’을 향한 도약이다. 환상은 실재하지는 않지만 주체의 내면에 내재되어있던 이미지를 향한 시도로서 ‘환상’을 향한 시도는 미메시스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되어 왔다.
우리는 회화에서 시각을 향한 이미지의 시도와는 전혀 다른 경향들을 찾아볼 수 있다. 초현실적이며, 아방가르드적인 이미지는 이성적 자아와는 전혀 분리된 영역에 존재하는 듯하다. 가시적 대상의 묘사는 물론, 공적 주체와도 요원하다. 여기에는 주체적 의식을 향한 자아의 확장이 아닌 합리적 세계에 머무르지 못하는 아방가르드적 정신이 담겨있다. 초현실의 이미지 속에는 강한 주체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지만, 이때의 주체는 이성적 주체가 아닌 다른 층위의 주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영역의 미메시스를 시도한 것이다. 이는 환영에 의한 환상의 이미지와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그림 10 (a)와 그림 10 (b)는 사실적 이미지에 기초하고 있지만, 일상이 포착이 아닌 작가의 내면을 시각화한 작품들이다. 이와 같이 사진에서도 환상의 창조를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는 더욱 본격적으로 환상을 향한 무대를 창조해나갔다. 영화에서의 환상은 영화적 장치가 조성하는 영화적 공간과 내러티브, 몽타주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왔다. 관객은 어두운 공간에서 신체를 제한당한 후, 허구적 사건과 인위적인 컷의 연속이 만들어내는 환상에 동참하면서 현실에서 분리될 수 있었다. 관객이 영화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환상이 시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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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사진
관객은 영화가 제공하는 환상에 매료되었지만 영화적 장치, 내러티브, 몽타주에 기반을 둔 환상의 창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로 환상의 장면, 상상의 이미지가 마치 ‘눈’이 생산하는 이미지와 같이 생생하게 재현되는 완벽한 환상의 무대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상의 창조에서 추상적 이미지, 비사실적 이미지는 환상을 제한하거나, 관객과의 소통에 한계점을 형성하게 된다. 회화보다 사진에서 보다 핍진한 사실적 환상성이 창조된다고 했을 때, 영화에서도 마치 ‘눈’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연속적 이미지의 사실성이 담보되어야 했던 것이다.
런던 바바라 업턴, 『사진』, 성낙인, 배병유 역, 미진사, 1989, p. 365.
6. 결 론
본 논문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 지속적으로 진보해 온 이미지 생산과 궁극적 지향점을 연구하기 위해 미메시스에 관한 플라톤의 학문을 토대로 전개하였다.
플라톤은 이미지를 이상적인 국가에서 몰아내어야할 대상으로 보았지만, 이는 소박한 사실주의에 그치거나 감각적 실재를 모방하려는 ‘나쁜 모방’에 해당한다. 하지만 미메시스가 직접 이데아를 모방하고자 한다면 이는 ‘좋은 모방’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미메시스를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적 방법론인 테크네가 전제되어야 한다. 때문에 플라톤은 이미지를 제작하는 테크네를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과 ‘참된 것이 아닌 것’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바로 ‘사상(似像)’의 제작과 ‘환상’의 제작인 것이다.
실제로 인류의 테크네가 진보하는 과정은 플라톤의 분류와 일치했다. 이집트인들과 같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대상을 구성하기도 했지만, 대상을 모방하고자 하는 인류의 의지는 ‘눈’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를 향해 나아갔다. 대상의 ‘재현’을 향한 사실성이 점차 높아지면서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반영하여 ‘신적인 것’ 즉, ‘이데아’를 향한 미메시스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즉 ‘사상’과 ‘환상’에 대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후 합리성이 부각되면서 사실적 이미지에 대한 욕구가 대두되었고, 카메라 옵스큐라가 BC4세기 이후 다시 등장하면서 사진의 발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비로소 수공에 의한 이미지와는 견줄 수 없이 핍진한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이 실현된 것이다. 초기의 사진이 스스로의 탁월성을 인지 못한 시기도 있었지만, 사진의 가치는 곧 부각되면서 현실을 완벽히 재현해나갔다. 이후 사진에서도 회화가 시도했던 것과 같은 ‘환상’이 시도되었고, 이어 등장한 영화에서도 ‘사상(似像)’을 기반으로 영화적 공간과 내러티브, 몽타주를 통해 ‘환상’을 지속적으로 창조해 나갔다.
바로 플라톤이 미메시스를 향해 분류했던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 그리고 ‘참된 것이 아닌 것’이 테크네를 점진적으로 축적하면서 ‘사상(似像)’과 ‘환상’을 향해 진보를 거듭해 온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다양한 이미지는 이러한 역사와 성찰의 결과물하고 할 수 있다.
BIO
최 원 호
2014년 부산대학교 예술학박사
2012년 4월~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산입체영상아카데미 촬영‧편집과정 책임교수
2013년 8월~10월 중국 중남재경 정법대학 한중합작학원 교환교수
2006년~현재 동서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
관심분야 : 디지털영상미학, 정신분석, 3D입체영상
이 왕 주
1988년 경북대학교 철학박사
New York 주립대 (버팔로) 대학원 비교문학과 수학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장 (역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 (역임)
부산대학교 사범대 윤리교육과 교수 (현)
부산국제영화제 포럼위원장 (현)
김 치 용
1991년 인제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2000년 인제대학교 대학원 전산물리학과 이학박사
2000년~2006년 2월 부산정보대학 정보통신계열 및 동서대학교 디지털디자인학부 조교수
2007년 6월~7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Harris Manchester College Visiting Fellow
2012년~2013년 2월 서울대학교 자동화시스템공동 연구소 디지털클로딩센터 객원교수
2006년 3월~현재 동의대학교 영상정보공학과 교수
관심분야: 3D Animation, Multimedia Design, Chaos & Fractal Design, VR Contents Design, 가상피팅시스템, Computational Physics
References
강 손근 , 박사학위논문 1997 동아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업턴 런던 바바라 1989 미진사 서울
벤야민 발터 2009 도서출판 길 서울
호머 숀 2009 은행나무 서울
이 경률 2007 동녘 파주
버거 존 1995 나남출판 서울
최 원호 , 김 치용 2013 한국멀티미디어학회논문집 16 (5) 647 - 656
플라톤 2013 사단법인 올재 서울
플라톤 2011 이제이북스 서울
곰브리치 E.H. 2005 예경 서울
Verdenius W.J. 1949 Mimesis : Plato's doctrine of artistic imitation and its meaning to us, Philosophia Antiqua Ⅲ Brill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