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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Desire of Subject and Digital Image
A Study on The Desire of Subject and Digital Image
Journal of Korea Multimedia Society. 2013. Dec, 16(12): 1475-1481
Copyright © 2013, Korea Multimedia Society
  • Received : July 10, 2013
  • Accepted : November 08, 2013
  • Published : December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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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 최
동서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부

Abstract
주체는 생존을 위한 욕구를 초과하여 근원적 결핍에 따른 욕망을 언제나 쫓는다. 이때 시각이 제공하는 직관성과 정보의 탁월성은 욕망의 대상을 향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주체는 이미지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영화가 ‘거울상’의 욕망을 재현하면서 무의식을 쾌락을 부상시켰다면 디지털 영상은 대상의 존재와 상관없이 완벽한 이미지로 관객을 압도함으로써 주체의 욕망에 대한 가상적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욕망을 섭입하고 욕망하는 경험을 통해 주체를 매료시키는 디지털 영상이 주체의 무의식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디지털 영상은 핍진한 이미지의 가상성을 통해 주체의 상상적 욕망을 부상시키고 타자의 욕망에 편승하는 경로가 되어 무의식의 주체에게 쾌락을 부여함으로써 주체를 매료시키고 있었다.
Keywords
1. 서 론
인간은 태어난 후, 신체적 자율성을 확보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생후의 인간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여 어머니에게 의존한다. 프로이트가 '운동 무력증'이라 했던 유아의 단계는 '미숙성 상태에서의 출생'으로 인해 타인에 의한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이때 파편적으로 인지되는 신체와 통제의 불가능성은 불안을 야기한다.
무기력하며 자생력이 없는 아기는 불안감 속에서 본능적 생존을 위해 외부와 소통하면서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욕구들이 해소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때문에 미성숙한 아기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감각에 의존하여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고 내부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욕구들을 '울음'으로 발화함으로써 어머니를 향해 요청한다. 바로 생존을 위한 본능적 전략이다. 이때 시각은 다른 감각보다 욕구와 요구의 생산에서 탁월하다. 시각이 제공하는 직관성과 정보의 탁월성은 감각의 우위를 점유하면서 생존본능에 기여한다. 성인의 경우에도 시각이 가장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감각의 차별성이 형성되는 것처럼 생후의 미성숙한 아기도 어느 감각보다 시각에 크게 의존한다. 무엇보다도 아기는 시각을 통해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있는 어머니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다. 낯선 세계에서 시각에 의한 어머니의 인지는 욕구의 대상을 찾는 일차적 과정 1) 과는 비교할 수 없는 희망과 안도를 아기에게 부여한다. 이후 아기는 생존을 위한 욕구의 충족을 요청하고 어머니는 아기의 욕구를 해소해준다. 그러나 아기의 욕구는 일시적으로 해결될 뿐, 욕구는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이러한 욕구의 반복은 자신을 돌보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독점을 욕망하게 되고, 아기는 본능을 위한 욕구와 함께 자신의 욕망을 보태어 요구를 생산한다. 여기에서 어머니를 향한 요구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 요구이기도 하면서 주체의 근본적 욕망을 형성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와 같이 생후의 아기가 처한 상황에서 '시각을 통해 어머니를 인지할 수 있음'은 아기에게 위안과 안정을 부여면서 생존을 넘어 어머니를 향한 욕망과 요구를 생산케 한다. 물론 시각적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도 청각, 후각, 촉각 등의 감각을 통해서도 어머니의 존재를 인지할 수도 있지만 시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가장 효과적이면서 탁월한 수단이 된다. 욕구의 대상을 향한 일차적 과정은 물론, 어머니를 향한 절대적 소유에 대한 욕망의 생산에서 시각은 가장 핵심적이다. 따라서 아기 때부터 시각이 제공하는 이미지에 묶이게 된 주체는 이미지의 영향력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체에게 이미지의 영향력은 성인의 경우에도 절대적이다. 시각과 이미지에 이끌리는 주체는 청소년기, 유년기, 유아기를 거슬러 출생과 함께 이미지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시각 그리고 이미지가 욕망의 생산은 물론 주체의 형성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할 때, 본 연구에서는 라깡(Jacques Lacan)의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대상의 실존과는 상관없이 완벽한 이미지로 주체를 매료시키는 디지털 영상의 성취의 기저에는 욕망을 향한 주체의 무의식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욕망의 대상을 이미지로 기억하는 과정.
2. 이미지와 욕망
이미지의 덫에 의해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라깡은 "동물행동학자인 로제 카이유가 동물이나 곤충이 주위환경의 색깔에 맞추어 그들의 색채를 변화시키거나 또는 그들의 환경과 구별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특정 무늬나 특징을 개발해왔으나, 주위환경의 외관을 닮은 곤충들이 그렇지 않은 곤충들만큼이나 포획되는 확률이 높다" 2) 는 이론에 기반을 두고 스스로 주변의 이미지에 포획된다고 하였다. 동물이나 곤충의 보호색이 눈으로 바라본 외부 세계를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를 변화시킨 것이라면 동물과 곤충의 시각에 비친 외부의 환경은 소유하기를 희망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시각에 따라 스스로의 이미지를 실현한 후에도 '외향의 변화'가 생존과 연관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이미지는 욕망의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라깡의 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유아는 거울에 맺힌 스스로의 이미지에 매료되면서 시각적 이미지가 제공하는 쾌락을 경험하게 된다. 비록 스스로의 신체적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거울에 의한 환희는 욕구와 욕망의 생산에 중요한 상호작용을 발생시키면서 주체의 형성에 크게 작용한다. 라깡은 이처럼 거울에 맺힌 이미지에 의해 유아의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거울단계'라고 하였다. 아기가 시각을 통해 욕망을 생산하면서 주체화되어가는 과정이 자아의 형성을 위해 개인적인 맥락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라고 할 때, 아기는 '거울단계'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미지와의 동일시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거울단계'의 이론에 따르면 주체는 "약 6개월과 18개월 사이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인식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일반적으로 쾌락이 수반된다." 3) 욕구의 대상과 어머니를 향했던 아기의 시각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체로 옮겨지고, 아기는 스스로에 대한 신체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이때 아기는 능동성의 부재로 인한 결여를 경험하지만, 거울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이미지 속에서 '기쁨'과 '쾌락'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파편화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신체는 거울 속에서 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거울 속 이미지의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인지하게 된다. 순간 아기는 거울 속의 이미지를 향해 나르시시즘적인 자기애를 형성하면서 이미지에 매료된다. 이후 아기는 거울에 의한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이미지에 자신의 위치를 부여한다. 이에 대해 라캉은 "그러나 동시에 그 이미지는 그것과 자기를 혼동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소외적이다. 자아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이러한 소외와 매료의 순간에 부상한다." 4) 라고 하였다. 라캉은 이와 같이 이미지에 의해 주체가 형성되는 첫 단계를 상상계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인간은 시각에 의한 이미지를 매개로 자아와 주체를 형성하게 됨으로써 이미지에 묶일 수 밖에 없다. 신체의 성숙과 주체의 형성 전부터 이미지에 의존하게 된 인간은 이미지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성인이 된 이후에도 거울상에서 경험했던 이미지의 '기쁨'과 시각적 '쾌락'을 잊지 못한다. 주체는 시각이 제공하는 이미지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미지의 중독성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시각적 이미지를 향한 욕망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숀 호머,『라캉 읽기』, 김서영 역, 은행나무, 2009, p. 48~49.
숀 호머, 위의 책, P.53.
숀 호머, 위의 책, p.54~55.
3. 이미지의 생산과 쾌락
활자와 인쇄술이 지식을 축적하여 문명의 진보를 이끌면서 인간의 자아를 성숙시키고 이성적으로 진화시켰다면, 시각에 의한 이미지는 최초의 거울상에서 느꼈던 '쾌락'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인류는 태곳적부터 이미지를 쫒아왔다. 삶에서의 생생한 현장을 기록하여 전달하기를 원했고 직관적으로 제공되는 이미지를 통해 즐거움을 찾고자 하였다. 인류문명의 발전과 함께 이미지의 재현은 눈으로 바라본 대상과 같은 '사실적' 이미지의 구현을 향해 진보되어 왔고, '사실적' 이미지의 재현은 이성의 성숙에 따라 이미지의 생산에서도 합리성이 점차 제고되었다. 이와 같은 이미지에는 주체 형성과정에서의 경험이 반복적으로 축적되었기에 이성적 합리성의 기저에는 거울상과 이미지를 향한 주체의 '쾌락'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랜 회화의 시대를 넘어 기계예술에 의한 이미지는 시각에 근접한 사실적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마치 '거울상'의 이미지와 같은 효과를 창출한다. '거울상'에 대한 잠재적 기억과 이미지를 향한 욕망은 사진의 발명을 통해 대중적 수준에서 폭발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사진술을 통해 인화지에 맺혀진 '거울상'은 이미지를 대면했던 첫 경험을 불러일으키면서 무의식의 쾌락을 자극하고, 인류는 사진이 생산한 이미지를 빠르게 수용, 흡수한다. 이어 등장한 영화는 '쾌락'의 자극을 극대화하면서 시각에 의한 욕망을 심화시켜나간다. 어두운 공간에서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할 때, 주체는 실제적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통해 '거울상'을 보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유아기로의 퇴행을 경험한다. 이때 영화적 공간 속에서 유아기로 되돌아간 주체는 '눈'의 확장으로써 렌즈가 만들어낸 상상적 이미지를 경험하면서 '기쁨'과 '쾌락'을 느끼게 된다. 최초의 '거울상'에서 아기가 환희와 함께 신체에 대한 통제력의 부재를 인식하고 거울 속 이미지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소외의 고통을 느꼈다면, 영화의 이미지를 대면하는 주체는 영화가 제공하는 이미지에 몰입되어 소외와 고통이 삭제된 '쾌락'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거울의 이미지가 소외와 고통을 수반하는 것과 달리, 영화의 이미지는 끊임없는 시각적 즐거움과 환상을 제공하면 서 주체에게 쾌락을 선사한다. 쾌락적 영화의 이미지에 매혹된 주체는 타인의 시각, 즉 렌즈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를 향해 주체의 통제권을 넘기면서 스스로를 진공의 상태로 되돌려놓는다. 이때 스크린의 이미지와 통합된 주체는 '쾌락'의 극대화를 경험하게 된다. 주체는 영화를 통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자아를 잊고 이미지에 매료되면서 한없는 기쁨의 환희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즉 주체가 이미지에 매혹되어 시각적 쾌락을 향하고 있는 순간, 주체의 무의식은 거울상의 경험과 유사한 시각적 쾌락 속에 빠져들게 된다. 주체는 무의식에 의해 점유당하면서 합리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던 주도권을 박탈당한 후, 영화 속 이미지가 제공하는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이다. 스크린과 거울 속 이미지를 동일시하게 된 주체는 영화 속에서 생산되는 욕망의 대열에 스스럼없이 동참하여 영화 속의 욕망을 섭입(攝入)한다. 이제 주체는 이드(Id) 5) 에 의해 점유 당한다. 합리성과 이성에 기반을 둔 주체의 의식은 무기력해지고, 상상과 욕망이 부상하여 실현되는 영화의 시각적 쾌락에 한 없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체는 영화적 공간에 의해 신체가 구속되지만 영화가 선사하는 욕망의 무대에 저항하지 못한다. 주체는 마치 거울단계의 유아처럼 신체의 자율성을 상실한 후, 이미지에 이끌리며 그것에 의존한다. 영화는 미장센을 통해 시각적 깊이를 전달하거나 연속되는 몽타주를 통해 주체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주체는 스크린이 제공하는 데쿠파주의 내러티브에 빠져들면서 이미지에 포획되어 빠져나올 수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 스크린이 제공하는 일련의 이미지들은 주체와의 동일시를 형성하면서 거울 속의 이미지에서 경험했던 환희를 불러일으킨다. 이미지를 향한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시각적 환상과 쾌락을 쫒아 온 주체는 영화가 유혹하는 시각적 욕망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개인적 맥락에 의해 생산되어 무의식 속에 잠재되었던 욕망은 스크린에 의해 매개된 후, 주체는 영화가 제공하는 이미지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호명되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주체의 무의식에 충격을 가하면서 잠재되었던 쾌락의 실현을 경험하게 한다. 때문에 관객은 영화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인간의 시각을 확장한 이미지의 재현이라는 표면적 탁월성을 넘어 무의식의 욕망을 부상시키고 눈앞에서 실제적으로 이를 실현시킴으로서 관객이 영화의 마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사진이 합리적 시각의 재현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였다면 영화는 어두운 공간에 주체를 앉힌 후 주체의 감각을 통제하면서 무의식의 부상을 이미지를 매개로 유도한다. 이때 능동성을 상실한 주체는 수동적 신체 속에서 시각의 감각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이미지의 향연에 빠져 저항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본능적 에너지의 저장소로서 쾌락을 따르는 무의식의 영역.
4. 디지털 영상과 욕망 이미지의 재현
아날로그가 직면한 한계를 디지털은 완벽히 새로운 방식으로 뛰어넘었다. 상상의 이미지를 대상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실제보다 더 핍진적으로 구현하면서 주체를 향해 다가온 것이다. 디지털은 존재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이미지에 생명을 부여하였고, 이로써 디지털 영화, 디지털 영상은 수용자의 저항을 불식시키며 실재를 실현하였다. 여기에 관객은 매료될 수밖에 없다. 이제 디지털 이미지는 실제 대상의 부재와 무관한 완벽한 이미지의 생명으로 관객을 압도하면서 상상의 이미지로 관객을 유혹한다.
즉 디지털이 시각적 이미지의 완성도를 높였거나, 불가능한 비현실적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표현했음은 디지털이 선사한 이미지 창조의 단면적 차별점이다. 디지털이 실현한 보다 지대한 업적은 억제되었던 상상계적 욕망을 생생한 이미지로 시각화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했으며, 나아가 자아와 초자아 6) 의 성숙에 따라 억제되어 왔던 이드를 이미지로 부상시킴으로써 이미지를 매개로한 가상적 주체의 전복을 향한 경험을 선사하게 된 것이다.
인류의 형성과 함께 이미지를 향해 지속되어 온 인류의 염원은 주체의 형성과 자아의 성숙에 따라 합리적이며 이성적으로 진화해 왔다. 인류문명과 사회화는 비이성적인 이드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면서 욕망을 향한 이미지는 보류했던 것이다. 이미지를 향한 요구는 합리적 묘사를 향해 진보하면서 자아에 의한 이성적 이미지의 재현을 향해 나아갔다. 이후 영화의 등장은 억제되었던 상상계의 이미지에 대한 경험과 가능성을 스크린을 통해 제공하였고, 관객은 영화에 열광하게 되었다. 영화는 다양한 장르에서 현실을 초과하는 이미지, 욕망의 이미지를 향해 나아갔고, 이로서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향한 인류공동의 염원이 감독, 작가, 연기자, 관객의 순환구조 속에서 조금씩 부상하게 된 것이다. 관객은 욕망이 무대화되는 내러티브와 환영적 이미지를 통해 가상적 욕망을 매개로 무의식과 욕망에 접근하게 된다. 때문에 관객은 영화가 은유로 매개하는 원망충족 7) 의 유희를 떨쳐버릴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화는 점점 더 효과적으로 무의식에 접근하는 욕망의 이미지를 생산하게 된다. 이때 디지털은 영화의 진보에 획기적인 추동력을 제공한다. 디지털은 영화가 시도하는 무의식을 향한 욕망의 이미지를 현실과 구별할 수 없도록 재현하면서 기술적 매개를 넘어 욕망의 영상문화를 완성시키는 무의식을 매개로써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에 의한 영상제작은 조작의 가능성은 물론, 실재적 대상의 부재에서도 사실적 이미지의 생산을 가능하게 함에 따라 이미지 생산에서 주체의 적극적 개입을 허락한다. 기계예술에 의한 복제의 경우, “객관적 관찰자로서의 '인식론적 창조'와 함께 주관적 선택자로서의 '존재론적 창조'가 가능하다.” 8) 그러나 여기에서는 근원적으로 현존하는 대상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지털 프로세서에 의한 영상의 생산에서는 이미지를 조작하거나, 이미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의 반영으로서 통로를 제공하게 된다. 개인적 맥락에 의해 생성된 무의식 속의 욕망은 디지털을 매개로 시각화를 시도하고, 디지털 영상은 자아와 초자아에 의한 이성적 이미지의 창조에서 벗어나 이드에 의한 욕망의 반영을 실현하는 것이다. 상상계의 이미지, 원망충족의 이미지를 향한 이드 속의 이미지는 디지털에 의해 보다 효과적이며, 완벽한 이미지로 실현된다. 무한한 변용과 창조의 과정은 '0'과 '1'의 조합을 통해 실현되면서 비로소 잠재되어 있던 주체의 욕망, 이드의 이미지가 디지털에서 생생하게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미지는 디지털이 지원하는 무한 복제, 네트워크에 의한 재생산의 과정에서 욕망을 증폭하면서 새로운 맥락에서의 재생산을 끊임없이 허락한다. 생산자와 재생산자는 주체, 이드의 개입이 허락된 이미지에 열광하게 된다.
나아가 디지털은 매체의 제한을 넘어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소비와 재생산의 장을 획기적으로 넓혔다. 이제 관객으로서의 소비자는 디지털영상이 제공하는 무의식의 가능성에 쉽사리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원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욕망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된 것이다. 무의식을 향해 주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무수히 생산된 디지털 영상은 수용자의 개인적 욕망에 따라 비선형적으로 접근을 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도덕적 이상을 따르는 정신의 영역.
주체의 긴장 해소를 위해 시각화된 욕망의 대상을 떠올리는 과정.
이경률, 『철학, 예술을 읽다』, 동녘, 2007, p.322~323.
5. 실재계의 빈틈과 디지털 영상
주체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이때 주체는 타자의 시선에 의해 영향을 받아 타자의 욕망을 스스로의 욕망으로 재설정한다. 상징계에서 욕망은 부분적으로만 발현되고 그 대상의 주위만을 맴돌지만, 영화에서는 욕망이 이미지를 통해 부상하고, 상징적 실현이 시도된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욕망의 근원에 대해 옥타미오파스는 "'사이'는 공간이 아니라, 한 공간과 다른 공간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다. '사이'의 왕국은 이율배반과 역설의 유령적 공간이다." 9)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사이'는 현실에서 실제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초현실과는 다르다. 초현실이 합리성과 이성의 대립점에 있는 무의식을 향한 세계라면 실재계로서의 '사이'는 욕망의 원인이 생성되는 빈틈이다. 실제의 현실에서 실재계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현실적 이미지의 틈을 비집고 영화적 공간을 통해 실재계의 반영을 드러낸다. 이 틈을 통해 욕망이 부상하는 것이다. 영화의 독창성 가운데 실재계를 이미지로 드러내는 창조성은 무의식과 욕망을 향할 수 있는 혁신적 통로이다. 때문에 영화의 공간은 환상의 공간이 되고,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허물면서 무의식이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디지털에 의한 영상은 실재계의 빈틈에서 부상하는 무의식의 대상을 향한 이미지의 구현을 시도한다. 순간의 찰나를 극대화하며, 불가시의 영역을 가시화한다. 디지털 영상의 공간이 불가능한 공간을 창조할 때, 욕망의 반영을 탁월하게 시도한다. 그러나 디지털 영상이 초현실적 이미지,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생산하기 때문에 실재계적 이미지를 드러낸다고 할 수 없다. 실재계의 틈은 구체화할 수 있는 객관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실재계에 의한 욕망의 원인, 욕망의 대상은 전통적인 기계예술에 의해서도 구현이 시도되어 왔다. 이는 시각적 묘사에 대한 시도를 넘어 실재계를 향한 시도이며,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향한 시도였다.
상징적 체계로 진입하면서 주체의 바깥으로 방출된 영역인 실재계는 실현될 수 없는 영역이다. 여기에서 상징은 의미체계이며 체계적으로 구축된 시스템으로써, 이는 사회화와 이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계는 상징계에 속하지도 않고 상상계에도 속하지 않는 비어있는 진공상태와 유사하다. 실재계의 빈틈에서 주체는 향락적 욕망만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욕동'과 같은 주이상스를 포함하기도 하다. 이때의 주이상스는 주체의 전복, 상징계의 전복을 시도하면서 주체에게 고통을 부여한다. 그러나 주체는 고통 속에서도 불구하고 욕망을 향한 시도를 포기할 수 없다. 무의식에서서 욕망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때 영화는 실재계의 빈틈에 대한 시각화 시도와 함께 주이상스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영화 속의 주이상스는 주체에게 실제적 고통을 부여하지 않지만 주이상스의 어두운 측면을 경험하게 한다. 타자의 욕망을 체험하면서 내러티브와 영상 이미지가 생산하는 주이상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기계예술에 의한 이미지가 내러티브를 매개로 실재계의 구현을 시도하였다면, 디지털 영상은 실계재를 생생한 이미지로 구현하면서 주체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긴다. 디지털 영상은 이미지를 향한 주체의 욕구에 부응하면서 대중적 차원에서 상징파괴와 상징해체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디지털 영상은 길들여진 욕망만을 생산,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제어할 수 없는 각 주체의 주이상스에 대한 접근을 허락한다. 주체는 성(性)을 향해, 폭력을 향해, 죽음을 향해 상징계 속에서 상징질서를 파괴하고, 주체의 전복을 실현한다.
이제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거부할 수 없는 영상방법론이 되었다. 디지털은 주체의 무의식과 욕망을 드러내는 경로가 되거나, 타자의 시각적 욕망에 편승하여 실재계의 빈틈을 경험하게 한다. 디지털 이미지는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면서 주체를 미지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영상은 타자를 향한 주체의 욕망을 언제나 상기시키고, 욕망의 대체물이 되어 주체를 불러들인다. 재생산의 가능성과 타자를 향해 열어놓은 디지털 윈도우는 재의미화를 거쳐 또 다른 타자를 유혹한다. 이때 주체는 타자와 결합하여, 타자의 욕망에 편승하게 된다.
그러나 디지털이 생산하는 이미지를 매개로 타자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거나,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모두 실재계와의 조우는 아니다. 실재계는 이미지로 구체화할 수 있는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욕망이 생산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실재계의 주이상스가 동반하는 고통이 타자의 욕망을 향한 이미지에 내재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모든 이미지에 향락과 고통, 쾌락과 죽음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이미지는 무의식 속에 잠재한 주체의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경로이며, 시뮬라시옹의 실현을 통해 타자의 욕망을 가상적으로 욕망할 수 있다. 때로는 디지털 이미지 속에서 반영되는 주이상스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주체가 경험하는 고통은 현실의 측면에서는 가상적 고통이다. 디지털 이미지는 실상이면서 허상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영상은 주체에게 실재계와의 만남, 상징 너머의 공간, 고통이 부과되지 않는 주이상스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언제나 잠재된 욕망을 억제할 수밖에 없는 주체에게 거부할 수 없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디지털 영상이 테크놀로지의 성숙에 의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실재계의 간극에서 형성되는 욕망을 시각적 이미지로 실현하면서 가상적 조우를 경험하게 했다. 디지털 영상이 논리적, 이성적, 합리적 주체성을 보류하면서 상징적 질서 속에서 주체를 욕망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옥타비오 파스, Xavier Villaurutia <죽음에 대한 노스탈지>의 서문, p.18. 장 루이 뢰트라, 영화의 환상성, p.30에서 재인용.
6. 결 론
주체의 욕망은 상징적 질서 속에서 실현되지 못한다. 그러나 디지털 영상, 특히 영화적 장치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영화는 타자의 시선을 섭입하는 가상적 시각의 확장을 통해 영화가 구현하는 욕망의 이미지로 주체의 전복을 경험하게 한다. 원망충족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면서 이드의 욕망에 대한 성취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아날로그 영상도 거울상의 이미지를 재현하면서 영화의 환상성을 드러내었으나, 디지털 영상은 비실재적 이미지를 완벽한 구현하면서 수용자의 저항을 불식시켰다.
디지털 영상의 구현력이 표피적 차원이라면 상상적 욕망의 시각적 통로의 구현은 보다 중대한 디지털영상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드와 욕망의 억제는 문명화된 주체에게 가장 큰 시련이다. 디지털 영상은 개인적 맥락에서의 욕망을 향한 주체의 원망충족을 허락하면서 생산과 재생산을 거듭한다. 아날로그 영상이 환상, 실재계의 간극에 대해 시도하였다면 디지털 영상은 실재계를 향해 주체를 끌어당기면서 주체의 충동성을 만족시킨다. 상징계 속에서 상상적 이미지의 구현을 통해 주체의 전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개인적 재생산은 새로운 주체의 욕망을 향한 대체물이 되어 주체를 만족시키거나, 타자를 유혹하게 된다. 주체와 타자는 디지털 영상을 통해 결합하고, 타자의 욕망에 편승하여 욕망을 재생산한다. 이제 디지털 영상은 욕망의 생산경로가 되고, 타자의 욕망이 비춰지는 창으로서 다가온다.
BIO
최 원 호
2003년 경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학석사)
2009년 부산대학교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 협동과정 예술학박사 수료)
2012년 4월~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산입체영상아카데미 촬영·편집과정 책임교수
2013년 8월~10월 중국 중남재경정법대학 한중합작학원 교환교수
2006년~현재 동서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
관심분야 디지털영상미학, 정신분석, 3D입체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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